첫 북극항로 시범운항 성공한 현대글로비스 이승헌 해기사남쪽으로 돌아가면 45일, 북쪽으로 곧장가면 35일 얼음 헤치며 새 항로 개척한 ‘바다 사나이’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현대글로비스의 북극항로 시범 운항에 투입된 ‘스테나 폴라리스’호는 러시아 쇄빙선이 뚫어준 길을 따라 운항했다. 작은 사진은 이승헌 현대글로비스 해기사. 현대글로비스 제공
“쿵! 쿵!”
하루에도 몇 번씩 있는 일이었지만 매번 가슴이 콩닥거렸다. 배 양쪽에 두꺼운 얼음이 부딪힐 때마다 나는 소리였다. 하루 한두 차례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배가 크게 흔들리기도 했다. 그가 탄 내빙유조선(너비 40m)은 앞에서 얼음을 깨는 쇄빙선(너비 30m)보다 폭이 넓어 어쩔 수 없었다.
지난달 11일 오후 4시 반경. 배가 드디어 북극해 구간을 빠져나왔다. 대서양과 인도양 등 어지간한 항로는 모두 가봤던 그였지만 이토록 안도감을 느낀 순간은 없었다고 했다.
“정말 감격스럽고 뿌듯했습니다. 사실 첫 북극항로 도전에 대한 설렘이나 기대보다는 부담이 더 컸거든요.”
지난달 29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현대글로비스 본사에서 만난 이승헌 해기사(海技士·30)는 첫 북극항로 시범운항을 성공적으로 마친 소감을 ‘감격’이란 말로 대신했다.
이 해기사는 “스테나해운 승무원들과 함께 근무하며 복잡한 북극항로 통행절차 등을 익히느라 정신없이 바빴다”며 “정식 해기사로 탑승한 게 아니었지만 항해 당직까지 서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북극항로는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다. 이번 항해 중 얼음이 둥둥 떠다니는 북극해를 통과한 기간은 13일이었다. 항해 기간 북극해 기온은 영하 10도∼영하 20도였고 매서운 바람까지 불었다. 그는 “너무 추워 방한복을 입지 않고는 잠깐이라도 갑판에 나갈 수 없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게다가 날씨도 변화무쌍했다. 폭설이 내리다가 금세 그치거나 날씨가 맑다가 삽시간에 안개로 뒤덮이기 일쑤였다.
북극항로를 이용하려면 여러 제약이 따른다. 우선 얼음이 녹아야 하기에 1년에 4개월 정도만 이용할 수 있다. 내빙 기능을 갖춘 배가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 길을 인도할 쇄빙선도 함께 가야 한다. 이 해기사는 “스테나 폴라리스호는 다른 유조선과 달리 선체에 쓰이는 철판의 두께도 훨씬 두껍고 얼음을 탐지하는 ‘아이스 레이더’도 설치돼 있다”며 “배를 조종하는 공간인 선교(船橋)의 유리창이 얼지 않도록 열선이 깔려 있고 프로펠러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2개나 됐다”고 전했다.
현재 국내 해운업체들은 내빙선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내빙선과 쇄빙선을 다른 나라에서 빌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렇지만 이 해기사는 북극항로의 경제성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북극의 얼음이 점차 줄어들고 선박 연료비도 갈수록 오르고 있는 만큼 북극항로는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현대글로비스는 이번 경험을 토대로 내년에도 북극항로를 이용해 화물을 수송할 계획이다. 해양수산부도 북극항로 상용화에 대비해 내년 중 해기사를 위한 ‘아이스 내비게이션(얼음바다 항해술)’ 연수 과정을 한국해양수산연수원에 개설할 계획이다.
박진우 기자 pj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