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기 경제부 기자
한국석유공사는 2009년 캐나다 하베스트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이 회사 주주들이 “자회사를 함께 인수하지 않으면 회사를 팔지 않겠다”고 버티자 제대로 된 자산 평가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일주일 만에 부실 자회사를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이 자회사는 인수 후 3년간 적자를 내면서 석유공사에 매년 1000억 원가량의 영업손실을 안기고 있다.
한국가스공사는 무리하게 추진한 해외사업으로 2015년까지 4조 원이 넘는 손실이 예상된다. 한국광물자원공사 역시 46건의 해외사업 중 19개가 적자 상태다.
2008년부터 자원 공기업들은 매년 해외 사업 규모의 목표치를 할당받았다. 이에 따른 예산도 배정받았다. 정권의 핵심 국정과제인 해외 자원개발 사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기 십상이었던 공기업들은 어떻게든 목표 달성에 혈안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자원 공기업들에 광구를 판 해외 기업들은 이런 사정을 모두 훤히 꿰뚫고 있었다. 공기업들의 약점을 파악한 해외 기업들은 의도적으로 연말까지 협상을 질질 끌었다. 결국 연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까봐 몸이 단 공기업들은 손해를 보면서도 웃돈까지 내주고 광구 인수에 나섰다는 얘기다. 이 전문가는 “인수 대상 기업들은 배짱을 튕기고, 국내 공기업들은 ‘제발 팔아 달라’고 통사정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반복됐다”고 말했다.
해외 자원개발 부실은 대통령 임기 내에 성과를 내고 싶은 정권의 과욕과 정권 눈치 보기에 급급했던 공기업들이 함께 빚은 투자 실패인 셈이다.
문제는 마구잡이로 벌인 부실 사업을 정리하고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출구전략이 필요한 지금부터다. 정부는 최근 해당 공기업들에 부실 자산 매각 등을 통한 부채 감축 계획을 내도록 했다.
잘못 산 물건을 제 값 받고 파는 일은 애초에 좋은 물건을 골라 값싸게 사는 것보다 어렵다. 공기업들이 좀 더 꼼꼼하고 치밀하게 출구전략을 짜야 하는 이유다. 자원개발 업무를 맡은 공기업들이 무리한 목표에 쫓겨 또다시 혈세를 낭비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문병기 경제부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