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구 중계본동 ‘백사마을’
백사마을의 모습은 타임머신을 타고 1960, 70년대로 돌아간 듯하다. 위쪽부터 주민들이 함께 쓰던 공동화장실, 수도시설 대신 식수를 해결한 공동 우물, 좁은 골목길과 마을 전경. 서울 노원구 제공
꼬불꼬불 좁은 골목길마다 낡고 작은 집이 옹기종기 붙어 있다. 겨울이 되면 골목길 사이로 연탄을 지게에 짊어지고 나르는 모습이 아직도 자연스럽다. 서울 한구석에 몰래 숨겨 놓은 1960, 70년대 영화세트장인가.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고 불리는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백사마을’의 일상이다.
늑대와 여우, 토끼가 살던 불암산 기슭에 사람이 살게 된 것은 1967년부터. 청계고가도로 건설 등 도시재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용산 서대문 마포 동대문 등에서 강제 철거된 1135가구를 정부가 산림청 소유의 임야로 이주시켰다. 개별 호수도 없이 하나의 번지로 묶어 중계본동 산 104번지. 통칭 백사(104)마을로 불렸다.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백사마을 3통의 마을 쉼터. 할머니들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만남의 광장 역할을 한다. ‘쉼’이라는 글자가 쓰인 벽화가 분주한 도시민들에게 잠시 쉬어갈 것을 권하는 듯하다. 서울시 제공
초기부터 정착한 사금자 할머니(81)의 회고. “안암동 다리 위 무허가 판잣집에 살았는데 철거반이 들이닥쳐 이불이며 살림을 싣고는 이곳에 내려놓고 살라고 했지. 32평(약 106m²)짜리 천막 1동에 네 가구씩 살았어. 넝마, 가마니, 종이박스 등 닥치는 대로 주워서 습기와 추위를 막았지.”
다음 해부터는 시에서 받은 시멘트블록 200장으로 주민들이 손수 집을 지었다. 1970년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 라면박스를 올려놓았던 지붕을 슬레이트로 바꾸고 기와를 올리기도 했다. 초기엔 전기, 수도도 들어오지 않았다. 공중화장실은 이 달동네의 빼놓을 수 없는 일상. 아침마다 길게 줄을 서서 발을 동동거렸다. 아직도 화장실이 없는 집이 많아 이동식 공중화장실이 곳곳에 있다. 시내로 나가려면 하루에 두 번 들어오는 시영버스에 매달려야 했다. 지금도 백사마을은 버스 종점이다. 지하철 2·7호선 노원역 1번 출구에서 1142번, 4호선 상계역 4번 출구에서 1143번, 7호선 하계역 3번 출구에서 1221번 버스를 타고 중계본동 종점 정류소에서 내리면 된다.
1970년대 후반에는 니트직물공장(일명 요꼬공장)이 한 집 걸러 있을 정도로 많이 생겨 옷감 짜는 소리가 가득했다. 늦게 일을 마치고 찬거리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많아 시장 길은 오전 2시까지 불을 밝혔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공장이 거의 사라지고 몇 곳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백사마을은 2008년 개발제한구역에서 해제되고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기존 지형과 골목길 등을 유지하면서 개발하기로 해 2016년에는 저층 골목과 현대식 아파트가 공존하는 새로운 마을로 탄생하게 된다.
백사마을은 서울시의 ‘자치구 동네관광상품화 지원사업’으로 선정돼 새로운 관광코스로 주목받고 있다. 노원구는 이달 30일까지 중계마을복지회관에서 ‘중계동 104마을 사진전’을 연다. 골목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 골목길의 장독대, 가지런히 쌓여 있는 연탄 등 옛 추억에 빠지게 된다. 11월 한 달 동안 동네골목 투어도 운영한다. 매주 수·금요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골목길 해설사가 골목 구석구석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무료로 들려준다. 내년 4월부터는 골목투어가 상설화된다. 02-2116-3777
이 밖에도 서울의 다양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알고 싶으면 서울시 관광정책과(02-2133-2817)에 문의하거나 시가 운영하는 온라인플랫폼 서울스토리(www.seoulstory.org)에서 확인하면 된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