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사설]피할 수 없는 도청 大戰, 자체 방어력 확보 시급하다

입력 | 2013-11-05 03:00:00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거의 모든 국가에서 무차별적으로 휴대전화, e메일을 도청한 사실이 내부자 폭로로 밝혀졌듯이 각국 정보기관이 벌이는 치열한 스파이전은 엄연한 현실이다. 미국 NSA는 120여 개의 통신감청망 에셜론(Echelon)을 이용해 지구상의 거의 모든 통신 내용을 매일 30억 건씩 감청하고 있다. 사무실에 앉아 말하는 소리를 유리창에 전해지는 진동을 통해 도청하고, 곤충이려니 무심히 지나친 물체에 고성능 감시 장비가 들어있는 세상이다.

도청 대전(大戰)에서는 동맹이냐 적국이냐의 구분도 없다. 교황이든 대통령이든 거리의 장삼이사(張三李四)든 필요하면 언제나 엿들을 수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방비를 튼튼히 하는 능력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보통신 대국인 한국의 통신환경은 네트워크 장비를 통한 도청에 극히 취약한 구조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특히 무선신호와 유선 통신망을 연결해 주는 휴대전화 기지국과 다른 통신망을 중계해주는 라우터 장비에 대한 외국 의존도가 크다. 성곽만 높이 쌓아 놓고 문지기는 외국인에게 맡겨 놓은 격이다. 시스템이나 장비를 제작할 때 유지, 보수를 위한 통로로 만들어놓은 ‘백 도어(back door)’가 사이버 공격의 침투로로 바뀔 가능성도 크다고 한다. 차제에 관련 기술의 국산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국가 전복이나 요인 암살, 테러 등의 중대범죄를 사전에 적발하기 어려운 상황도 문제다. 통신비밀보호법상 제한적으로 휴대전화에 대한 감청을 허용하고 있지만 감청장비가 없어 정보수집 활동에 제약이 많다. 김대중 정부 시절 광범위한 휴대전화 불법 감청 사실이 적발된 뒤 국정원은 감청장비를 폐기했고, 국가예산으로 이동통신사에 관련 설비를 갖추자는 법안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요즘 세상에 누가 사무실이나 집 전화로 범죄모의를 하겠는가. 정보기관이 차 떼고 포 떼고 장기 두는 격이라는 푸념을 할 만하다.

한때 중요 정보를 정권안보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우려 때문에 휴대전화 감청 문제는 공론화가 어렵다. 하지만 사회 위협 세력에 맞설 능력을 스스로 없앤 것은 아닌지 재고할 필요가 있다. 통신비밀보호법은 시대의 흐름에 맞춰 손질하는 게 옳다. 물론 대전제는 감청 대상과 범위를 최소화하고, 법관의 영장에 근거하는 등 적법절차를 준수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정보기관이나 수사기관은 엄정하게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는 신뢰를 받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