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이 교사, 노원구 ‘마을학교’
서울 노원구 포크기타음악 마을학교에서 어린이들이 구현순 씨(왼쪽)의 지도에 따라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노원구에는 주민들이 지역 아이들을 위한 교사로 참여하는 마을학교 80곳이 운영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지난달 31일 오후 4시 서울 노원구 중계1동 주민센터 2층에서 흥겨운 기타 소리가 흘러나왔다. 연주곡은 한스밴드의 노래 ‘오락실’이었다. 초등학생 8명이 악보를 보며 신나게 기타를 치고 있었다. 그 옆에서 기타를 멘 구현순 씨(52)와 이경은 씨(40)는 꼬마 연주자들의 코드 짚는 자세를 자세히 살폈다. 이 씨와 구 씨는 ‘포크기타 음악 마을학교 선생님’이다.
구 씨와 이 씨는 노원구 하모니 기타 합주단 단원이다. 각각 10년, 7년씩 활동한 베테랑으로 아이들을 둔 주부들이다. 취미 생활로 기타를 연주하던 이들은 올해 8월부터 매주 월요일, 목요일 두 차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수업료는 없다. 아이들은 각자 집에서 기타만 가져오면 된다. 을지초교 5학년 심영진 군(11)은 “엄마가 ‘기타를 배워보겠느냐’고 하셔서 오게 됐는데 지금은 기타가 피아노만큼 쉽고 재미있다”고 말했다.
마을학교는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칠 만한 재능이 있는 주민이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구는 북부교육지원청과 함께 심사위원회를 구성해 강의 내용을 심사한 뒤 개설을 허가하고 있다. 상업적인 강의를 걸러내기 위한 것이다. 강사에게는 시간당 2만 원가량의 교통비만 제공한다. 아이들은 재료비나 교재비 정도를 부담한다. 사실상 무료로 수업을 듣는 셈이다. 구청은 주민센터나 구립 도서관을 수업장소로 제공한다. 구 씨는 “아이를 다 키워놓고 봉사활동 기회를 찾고 있었는데 재능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며 “아이들이 잠시라도 학원을 벗어나 노래를 하며 어울리는 모습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마을학교에는 영어, 논술, 토론 등 학습과 관련된 강의뿐 아니라 다양한 예체능, 체험학습 프로그램이 마련돼 인기를 얻고 있다. 사설학원에서 수강료를 내도 배우기 힘든 프로그램도 많다. 상원초교 운동장에서는 현직 과학교사인 이동호 선생님이 학생들과 함께 망원경으로 별과 달을 관찰하는 ‘별을 보는 마을학교’가 매달 서너 차례 열린다. 장우진 건축가는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세계 유명 건축물의 모형을 만들고 반려동물의 집을 아이들이 직접 디자인하게 하는 ‘어린이 건축마을학교’를 운영한다. 노원구는 학생들의 마을학교 활동 내용을 ‘성장이력관리시스템’으로 만들어 대학교 입학사정관제 전형이나 기업체 입사에 참고자료로 활용하는 방안을 교육청과 협의하고 있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