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힘들고 집값은 천정부지… 현실이 암담한 이땅의 청춘들… 사랑도 마음놓고 못하는 신세젊은층 결혼기피 풍조 막으려 日은 정부가 나서 지원사업썸남 썸녀 결혼 권하고 싶으면 일자리-집 걱정 먼저 덜어줘라
정지은 사회평론가
연애의 기술을 가르치는 연애 전문 학원이 생기고, ‘작업’에 서툰 일반인들을 구제해 일명 ‘선수’로 만들어 준다는 전문가 ‘픽업 아티스트’까지 등장했다. 남녀가 자신의 짝을 찾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자 이 프로그램을 모방해 실제 남녀 만남을 주선하는 버스 여행상품도 나왔다. 대학에서는 연애와 결혼 특강이, 개그콘서트에는 ‘안 생겨요’ 코너가 인기다. 결혼생활학교에서 384시간 강좌를 이수하고 면허증을 발급받아야 결혼할 수 있는 미래를 그린 ‘결혼면허’라는 장편소설까지 나왔다.
‘모태솔로’가 대국민 상담거리가 되는 한국에서는 연애도 일정 나이가 되면 해야 하는 일종의 자격 요건이다. 요즘은 5대 스펙(학벌, 학점, 토익, 어학연수, 자격증)도 아니고 8대 스펙(봉사, 인턴, 수상경력 추가)쯤은 있어야 취직이 된다는데 이러다가는 ‘(교제 기간) 1년 이상 연애 경험 최소 3회’ 같은 조건마저 스펙이 되는 건 아닐지 걱정스럽다.
‘내가 할 일이 없어서 혹은 심심해 미칠 지경이어서 문자를 날리는 게 아니다. 너를 생각해 문자를 보내는 중이라는 뜻을 은근하게 밝혀주었다. 지친 너에게 보내는 내 상큼한 미소라는 거였다.’
소설의 한 대목을 인용했지만, 아주 간단해 보이는 이모티콘(^^) 하나를 놓고도 위와 같은 장구한 분석과 이유를 늘어놓는 것이 요즘 연애다. 상대방에게 바로 답 문자를 보내지 않고 잠시 틈을 두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연락 올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 바로 답하면 쉬워 보이니까 일종의 ‘간보기’를 하는 것이다. 이러니 남녀를 불문하고 기껏 한다는 고백이 ‘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 줘’ 정도일 수밖에. 다행히(?) 한국만 이런 상황인 건 아니다. 일본에서는 젊은 층의 결혼 안하는 풍조를 막기 위해 정부가 나서서 ‘매리지 서포터(Marriage Supporter)’ 제도를 만드는 등 결혼 활동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 결혼을 피하는 이유로 남녀 공히 고용 불안정과 결혼비용 부족을 최우선으로 지적했고, 특히 미혼 남성의 40.4%는 ‘경제적 이유로 결혼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제 결혼은 ‘농촌 총각’의 문제가 아니라 ‘비정규직 총각’의 문제다. 한 남성은 “위축되어 있다 보니 괜찮은 이성을 만나도 ‘나 따위가 감히 어떻게’라고 자기 검열을 먼저 하게 되고…얼마 있지 않던 연애세포마저 죽어 버린 것 같다”고 고백한다.
단언컨대, 요즘에는 사랑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단칸방에서부터 시작해도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던 시대가 아닌 만큼 결혼은 더 나은 미래를 담보하기 위한 첫 단계가 아니라 한 치 앞이 불안한 미래 속으로 뛰어드는 무모한 짓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국 사회는 이런 사정은 아랑곳 않고 ‘네 나이면 결혼을 해야지’ 참견하느라 바쁘다. 정 그렇게 결혼을 권하고 싶으면 먼저 그 넓은 오지랖의 능력을 발휘해서 일자리 걱정과 집 구할 걱정을 덜어주는 건 어떨까? 썸남과 썸녀가 연인 사이로 발전해 실컷 연애하고 마음 편히 결혼할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