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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고 달리다 4년만에 ‘홈’ 귀환

입력 | 2013-11-05 03:00:00

6집 ‘본격인생’낸 록밴드 ‘타카피’




밴드 ‘타카피’는 1999년 ‘바람 바람 바람’을 부른 김범룡의 손에 픽업됐다. 밴드 이름을 ‘닭과 피’로 오해받기도 했다. 앞쪽이 김재국(보컬, 기타)이고, 뒷줄 왼쪽부터 박세환(베이스), 장영훈(드럼), 이선환(기타)이다. 넷 다 A형이다. 디에이치플레이 엔터테인먼트 제공

4인조 록 밴드 타카피의 음악은 ‘타카피’ 같다.

국어학적으로 보면, 거센소리이자 허파 끝에서 터지는 파열음에 해당하는 자음 ‘ㅋ’ ‘ㅌ’ ‘ㅍ’를 주렁주렁 매단 밴드 이름처럼, 통쾌하게 긁어 내고 내지르며 질주하는 펑크 록이 타카피의 주무기다. 한국사를 좋아하는 리더 김재국(41·보컬 기타)이 삼별초(三別抄)를 ‘스리 어나더 카피(three another copy)’로 해석해 ‘티에이카피(t.a.copy)’로 압축했던 게 ‘타카피’로 굳어졌다. 사전엔 없는 단어다.

2008년부터 현재까지 케이블 채널 KBS N의 야구 중계 삽입곡으로 쓰이는 ‘치고 달려라’가 이들 노래다. “2008년 이삿짐 나르고 편의점 아르바이트 하면서 힘들게 음악 할 때였어요. 야구 중계에 삽입할 신나는 곡을 만들어 달라는 의뢰가 왔죠. 안 어울리는 행보 같아 고사했는데 담당 PD가 직접 찾아와 참치 회를 사 주며 설득했어요. 아기 분윳값이 없을 정도로 힘들 때여서 고민 끝에 ‘OK’ 했던 건데….” (김재국)

‘치고 달려라’의 히트는 김재국과 타카피에 양날의 칼이었다. 경제적 안정, 음악적 정체. 배가 부르자 창작이 막혔다. “1996년, 재수생 시절에 서울 압구정동의 재개봉 영화관을 빌려 첫 공연을 한 뒤 잠실 집으로 돌아오면서 결심했어요. 딴 데 안 보고 죽을 때까지 음악만 하겠다고. 밥벌이만 되면 족하다고. 근데 막상 ‘치고 달려라’로 밥벌이가 해결되니 목표가 사라진 거죠. 음악 하는 이유가.”

세월을 허송하던 김재국의 초심을 두드려 깨운 게 지난해 선배 밴드 들국화의 재결합이다. 지난해 7월 지산밸리록페스티벌에서 다시 뭉친 들국화가 부르는 ‘그것만이 내 세상’ ‘행진’을 들으며 그는 머리에 강펀치를 맞은 듯 멍해졌다.

김재국은 ‘들국화의 행진’이란 곡을 지었다. 1년여간 귀신에 홀린 듯 작곡한 600곡 중 하나다. ‘지친 게 확실한 거야/멈춘 지가 벌써 일 년… 우린 들국화의 행진/형제자매여 진격하소서/운명 다할 때까지’란 가사는 들국화에 바치는 헌사이자 삼별초 같은 투지를 스스로 되새기는 것이었다. 이 노래는 지난달 4년 만의 정규 앨범으로 나온 6집 ‘본격인생’의 타이틀곡이 됐다.

근데 음반 나온 지 5일 만에 들국화의 드러머 주찬권이 별세했다.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괜히 이런 노랠 만들어서…, 들국화의 새로운 행진 덕에 저희도 행진을 다시 시작했는데….” 타카피는 고인에 대한 예를 지키자는 생각에 즉시 타이틀곡을 다른 노래로 바꿨다.

김재국은 올해 열 살에서 열일곱 살 차가 나는 박세환(31·베이스) 이선환(24·기타) 장영훈(30·드럼)을 새 멤버로 뽑았다. 크라잉넛, 노브레인 같은 1세대 펑크 록 밴드들과 함께 하던 1990년대식의 원초적인 펑크 록으로 회귀하기로 했다. 희망적인 새 타이틀 곡 ‘사랑 시작’과 ‘위대한 항해’에만큼은 힘찬 현악을 더했다. “‘사랑 시작’은 제가 다시 귀의한 신(神)에 관한 노래예요. 다시 신인의 마음으로 요즘엔 음악 공부도 해요.”

타카피는 8일 오후 8시 서울 서교동 KT&G 상상마당 라이브홀에서 4년 만의 단독 공연 ‘본격인생’(3만 원·02-599-0335)을 연다. 펑크 삼별초의 출사표는 짧고 굵다. “가사가 슬퍼도 악곡은 신나는, 생명력이 꿈틀대는 타카피식 펑크 록을 바치고 싶습니다. 들국화에, 새로 시작하는 모든 이에게.”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