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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떠나고 재회하는 공간… 아홉가지 이야기 토막

입력 | 2013-11-05 03:00:00

연극 ‘터미널’ ★★★




“우리 사귈까?” “장난하냐?” 옴니버스 연극 ‘터미널’ 중 ‘전하지 못한 인사’. 스토리피 제공

터미널은 지극히 사적(私的)인 공공의 공간이다. 평생 지워지지 않는 저마다의 강렬한 기억이 24시간 동시다발로 곳곳에 새겨져 쌓인다. 이별하고, 재회하고, 떠나고, 돌아오고, 끝내고, 시작한다. ‘해바라기’(1970년)부터 ‘러브 액츄얼리’(2003년)까지, 고갱이 장면이 터미널인 영화는 일일이 헤아리기 어렵다.

연극 ‘터미널’의 무대는 단출하다. 깔끔하게 도려낸 정사각형 프레임 앞에 나무 벤치 두 개만 덩그러니 놓았다. 기차역이든 공항이든 버스정류장이든, 터미널이라 부르는 공간에 뚜렷한 정형이 없음을 새삼 깨닫게 한다. 터미널을 규정하는 것은 공간의 형태가 아니다. 떠나고 돌아오고 기다리는 행위가 끌어안은 사연들이다.

9명의 작가가 터미널에 얽힌 각자의 이야기 토막을 다듬어 내놓았다. 8명의 배우는 역할을 바꿔 맡으며 그 토막들을 차례차례 엮어낸다. 허구한 날 툭탁거리던 같은 과 동기에게 ‘사실 나 너 좋아해’라고 고백해버린 깊은 밤 버스정류장, 시골 청년이 구깃구깃한 재킷 안주머니에 두툼한 돈 봉투를 품고서 베트남 처녀를 기다리는 서울역 화장실 앞 싸늘한 그늘, 소처럼 일만 하다 정말 소로 변해버린 아버지가 구슬피 울부짖는 시골 시외버스터미널, 이동식 러브호텔로 변신한 핑크빛 KTX, 우체국 택배를 손에 든 메텔과 철이가 나란히 선 ‘은하철도999’ 정거장까지. 터미널의 풍경처럼 희극과 비극이 두서없이 교차한다.

20분 남짓한 단편 9개 중 5개를 날마다 바꿔 가며 묶어 공연한다. 호흡이 짧은 만큼 여운도 길지 않지만, 지루한 사연을 참아내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처할 위험도 그만큼 덜하다. 3일 무대의 두 편은 그저 졸렸다. 조는 와중에 다음 편에 대한 기대를 품을 수 있는 건 분명 장점이다. 나머지 4편을 보기 위해 다시 찾게 될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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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까지 서울 동빙고동 프로젝트박스 시야. 박춘근 김태형 유희경 조인숙 임상미 조정일 고재귀 천정완 김현우 작, 전인철 연출. 이명행 김주완 우현주 서정연 이창훈 이은 유동훈 황은후 출연. 3만원. 02-744-4331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