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스포츠레저전문기자
문제는 또 있다. 그의 제자 선동열 기아타이거즈 감독(50)도 함께 죽을 쒔다는 것이다. 8위는 사실상 꼴찌나 마찬가지. 치욕이다. ‘멍게감독’ ‘멍든 감독’(얻어터지기만 한다는 뜻)이라며 아우성이 빗발쳤다. 한순간에 ‘그 스승에 그 제자’가 동네북이 됐다.
도대체 감독의 비중은 어느 정도나 될까. 아무리 약한 팀이라도 명장만 모셔오면 우승할 수 있을까. 2002 월드컵 당시 한국팀에서 히딩크 감독의 비중은 절대적이었다. ‘히딩크에 의한, 히딩크를 위한, 히딩크의 팀’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사실상 히딩크가 한국을 4강에 올려놓았다. 그는 교주였고, 선수들은 신도였다. ‘그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할 정도였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선 감독의 능력으로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 게임을 5경기쯤으로 본다. 아무리 명감독이라도 고작 5승 정도(총 162경기)의 프리미엄밖에 없다는 얘기다. 메이저리그는 어디까지나 선수 중심으로 돌아간다. 한국프로야구는 어떨까. 한 시즌 10승쯤(총 128경기) ‘감독 덕’을 볼 수 있을까. 아직도 그 비중이 작지 않다. 그래도 요즘은 나은 편이다. 초창기엔 그 비중이 절대적이었다. 김응용 감독은 그 시절 우승을 도맡아 하다시피 했다.
이제 시대가 변했다. 한국야구 수준도 엄청 높아졌다. 중심축이 점점 선수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감독이 시시콜콜 신경 쓸 일이 크게 줄었다. 감독은 누가 빠져도 빈자리가 드러나지 않는 팀을 만들어야 한다. ‘똑똑한 몇몇’에 의지했다간 큰코다친다. 결국 선수 자원이 승패를 가른다.
올 한국시리즈 우승을 다툰 삼성과 두산이 그렇다. 이른바 ‘화수분 야구’다. 밑에서 좋은 선수들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굳이 비싼 돈 들여 사올 필요가 없다. 텃밭에서 직접 키워서 쓴다. 삼성에서 두 번이나 우승한 선 감독이 기아에선 맥을 못 춘 이유다. 기아는 겉만 번지르르하지 하체가 부실하다. 속 빈 강정이다. 김 감독의 한화엔 아예 1군에서조차 쓸 만한 선수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한화나 기아나 2군전용구장이 가장 늦었다. 한화는 지난해, 기아는 올해야 마련했다. 그동안 2군 선수들은 고교운동장을 빌려 1, 2시간씩 연습해왔다. 두 팀 모두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이다.
김응용 감독이나 선동열 감독 모두 계약기간이 딱 1년 남았다. 기회는 오직 한 번뿐. 일모도원(日暮途遠).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 허리띠는 풀렸는데 머리엔 물동이 찰랑찰랑, 소나기는 퍼붓는데 걷어야 할 빨래 끝이 없고, 찌개는 끓어 넘치는데 젖 달라고 울어대는 쌍둥이, 설사는 쏟아지려는데 천지간에 화장실은 전무…. 어쩔거나.
감독은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어떤 이유도 필요 없다. 작전능력은 어느 감독이나 비슷비슷하다. 카리스마니 뭐니 그런 건 우승하면 저절로 따라온다. 덕장, 지장, 용장, 맹장 그딴 거 모두 허튼소리. 지면 졸장, 이기면 명장이다. 그게 강호의 법칙이다. 낙장불입.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김화성 스포츠레저전문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