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희 소비자경제부 기자
‘(감시하듯) 전화할 때 지금 어딘지, 뭐 하는지, 언제 오는지 묻지 마요.’ ‘우르르 몰려다니며 같은 시간에 점심 먹지 말기. 같이 점심 먹는 것도 때로는 신경 쓰이니까요.’ ‘회사를 위해 희생하지 마요. 당신의 삶이 먼저예요.’
신의 직장의 핵심은 사실 높은 연봉, 멋진 사옥 같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이런 조직문화다. 사내에 수영장이 아니라 아이스링크가 있다 한들 ‘분위기상’ 편하게 출입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 사람들이 제니퍼소프트란 회사에 열광하는 것은 이곳의 조직문화가 직원의 개성과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해주는 놀이터 같은 일터, 신바람 나는 공동체의 모습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회사에 대한 이 같은 집단적인 관심은 역설적으로 우리의 현실이 그만큼 암울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의 실험이 이를 잘 보여준다. 실험용 개를 셔틀박스(실험상자)에 넣고 피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전기충격을 지속적으로 가하면 이후 개들은 칸막이만 뛰어넘으면 전기충격을 피할 수 있는 환경에서도 바닥에 누워 침울하게 고통을 견딘다. 아무리 노력해도 제 힘으로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체험한 뒤엔 새로운 시도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다. 이른바 ‘훈련된 무기력’이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이처럼 무기력을 유발하는 두 가지 요소로 ‘통제 불가능’과 ‘예측 불허’를 꼽는다.
그런데 만약 이 같은 속성이 조직문화에 뼛속 깊이 스며 있다면 어떨까. 철저한 상명하복, 지나친 결과주의, 종잡기 힘든 주먹구구식 정책과 한계를 넘는 업무량. 혹 우리의 조직문화에 무기력을 학습시키는 독립변수(‘무작위 전기충격’)들이 너무 많은 건 아닐까. 직장인들의 만성화된 우울증, 특정 회사에 대한 사회적 열광을 짚어보기 위해선 결국 진지한 고민이 수반돼야 한다. 모든 회사가 제니퍼소프트 같을 순 없다. 개인이 어떻게 무기력을 극복할 것이냐 역시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하지만 적어도 조직이 무작위 전기충격이나 가하는 ‘셀리그먼의 셔틀박스’가 돼선 곤란하단 점은 분명하다.
박선희 소비자경제부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