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英 국빈방문 이모저모
여왕과 여성 대통령의 첫 만남은 그 자체로 관심을 끌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5일(현지 시간)부터 2박 3일 일정의 영국 국빈 방문을 시작했다.
영국은 1년에 두 번만 외국 정상을 국빈 초청해 대영제국 왕실의 화려한 전통 의전으로 고품격 대접을 한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등극한 지 61년 동안 59개국 정상만 국빈 초청을 받았고 두 번 이상 초청받은 나라는 25개국밖에 없다. 영국 최대 우방국인 미국 대통령 중에도 국빈 방문 예우를 받은 이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 등 두 명뿐이다.
박 대통령은 우리나라 대통령으로는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9년 만에 국빈 초청을 받았다. 영국 왕실은 박 대통령 당선 직후 스콧 와이트먼 주한 영국대사를 통해 조속한 국빈 방문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나라의 높아진 위상, 최초의 한국 여성 대통령이라는 점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영국 런던 현지 시간으로 5일 오전 11시 40분, 요크 공작(앤드루 왕자·여왕의 2남)이 박 대통령이 묵고 있는 힐턴 호텔을 찾았다. 박 대통령의 숙소 거실에서 잠시 환담을 나눈 뒤 요크 공작은 박 대통령과 함께 호스가즈 광장으로 향했다. 노 전 대통령 때는 3남인 웨섹스 백작(에드워드 왕자)이 영접했다. 영국 공식 방문 의전의 시작이었다.
호스가즈 광장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내외와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윌리엄 헤이그 외교부 장관, 테리사 메이 내무부 장관, 육·해·공군 참모총장 등이 기다리고 있었다.
군악대의 애국가 연주가 이어지는 동안 런던 도심의 그린파크와 런던타워에서는 41발의 예포가 발사됐다.
근위대 사열을 마친 뒤 왕실 전용마차가 입장했고 박 대통령은 백마 6필이 이끄는 황금색으로 장식된 1호 마차에 여왕 내외와 함께 탑승했다. 9년 전에는 관행에 따라 노 전 대통령과 여왕이 1호 마차, 필립 공과 권양숙 여사는 백마 4필이 이끄는 2호 마차에 탔지만 미혼인 박 대통령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여왕 내외가 함께 마차를 탔다. 박 대통령과 여왕이 나란히 타고 에든버러 공이 맞은편에 탑승했다. 영국의 나머지 공식 수행원 10명도 흑마 2필이 끄는 마차에 나눠 탔다.
이날 공식 환영식의 하이라이트는 호스가즈 광장에서 버킹엄 궁까지 1.6km에 이르는 마차 행진이었다. 마차 행렬은 호스가즈 광장에서 더몰을 거쳐 퀸스가든 남단, 버킹엄 궁 중앙문을 통과한 뒤 10분여 만에 대현관에 도착했다. 박 대통령은 버킹엄 궁 직원, 왕족들과 인사를 나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내외는 박 대통령을 직접 버킹엄 궁 내 숙소로 안내했다. 박 대통령의 숙소는 ‘벨지언 스위트룸’으로 여왕이 묵는 숙소와 같은 건물에 있다. 박 대통령은 이틀 밤을 이 방에서 묵게 되며 공식 수행원 중 4명(외교부·산업통상자원부·미래부 장관, 의전장)도 같은 건물에 묵는다.
여왕은 이번 방문 때 박 대통령에게 수여하는 바스대십자훈장(Grand Cross of the Order of the Bath)과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소장품들을 박 대통령과 함께 관람했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박 대통령이 여러 차례 정치적 롤모델로 꼽은 인물이다. 박 대통령은 궁중음식을 담는 구절함과 최상급 인삼인 천삼을 여왕에게 선물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은 5일(현지 시간) 두 차례 영어로 말을 했다. 웨스트민스터 궁을 방문해 영국 의원들과의 대화에서 영어로 연설을 했고, 국빈 만찬 때도 영어로 인사말을 했다. 박 대통령은 연미복과 이브닝드레스, 전통의상 중 선택할 수 있는 국빈 만찬 의상으로 한복을 택했다.
영국은 한국전에 5만6000여 명을 파병했으며 이 중 1000여 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파병 16개국 중 유독 영국에만 수도에 한국전 참전 기념비가 없었다. 박 대통령은 5일 런던 국방부 건물 뒤편 정원에 세워질 참전기념비 건립 터에서 진행된 기공식에 참석했다. 4개월 전 방한 때 박 대통령이 직접 참전 기념비 건립 설립 도움을 요청했던 글로스터 공작(여왕 사촌)과 2011년 케이트 미들턴과의 ‘세기의 결혼’, 7월 ‘로열 베이비’ 출산으로 전 세계에 화제가 된 케임브리지 공작(윌리엄 왕세손)도 참석했다.
런던=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