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논문
조선시대 김치는 왕가나 상류층만 먹는 최고급 요리였다. 하지만 그 탁월한 맛 때문에 수요와 공급이 늘어나며 가격이 하락해 점차 대중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동아일보DB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55)는 5일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린 심포지엄 ‘김치, 김장문화의 인문학적 이해’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논문을 발표했다. 세계김치연구소 주관으로 열린 심포지엄에서 윤 평론가는 “조선 초기 최고급 중국산 배추를 수입해 만든 김치는 왕실이나 최고위층 양반만 맛볼 수 있는 요리였다”고 설명했다.
세종실록에는 중국 사신이 새우젓으로 담근 김치 두 항아리를 요청하는 대목이 나온다. 겨우 김치 두 단지가 황제 진상품 목록에 오를 정도로 진귀한 음식이었던 것이다. 당시 김치의 주 재료인 배추는 종자 한 되가 하인의 몇 달치 월급과 맞먹을 만큼 비쌌다. 왕실에서도 국가 제사에 쓰기 위해 배추밭을 따로 관리할 정도였다.
이리도 귀한 김치가 대중적으로 퍼져나갈 수 있었던 까닭은 뭘까. 역설적으로 그만큼 맛있었기 때문이었다. 입맛에 맞는 고급 요리를 찾는 이들이 상류층을 필두로 늘어났고, 농민들은 김치를 담가 팔면 수익이 커지니 앞다퉈 배추를 심었다. ‘수요-공급의 법칙’이 대량생산의 불씨를 댕겼고, 공급이 늘어나니 가격도 하락했다. 18세기 중반 김치에 고춧가루를 넣기 시작한 것도 향신료인 후추나 산초 가격이 워낙 비싸 대안으로 각광을 받은 것이다.
지역마다 김치 맛이 달랐던 것도 이런 경제적 요인이 작용했다. 어업이 활발한 삼남 지방은 젓갈 수급이 용이해 맵고 짠 김치를 담가 먹는 문화가 일찍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시장 자체가 영남의 8분의 1 수준이던 함경도는 비싼 젓갈을 구할 유통 경로가 부족해 싱겁고 담백한 김치를 주로 먹었다.
윤 평론가는 “단지 기후 탓에 김치 맛이 지역마다 다르다는 도식적인 구분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며 “당대 김치 재료의 가격과 유통 구조가 제조 방식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