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군 포고문, 북한 토지 개혁… 반복되는 역사 왜곡 새 자료와 증언을 반영 안하는 집필 능력에도 의문 실력과 안목 있는 학자들이 사명감 갖고 나서야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광복 직후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은 토지 분배를 서둘렀다. 주민 지지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해 준비를 마치고 이듬해 3월 시행했다. 남한은 북한보다 늦은 1950년 3월 ‘농지 개혁’에 나선다. 교과서는 북한의 경우 ‘무상 몰수 무상 분배’였고 남한은 ‘유상 매수 유상 분배’였다고 대비시킨다. 학생들은 북한 쪽이 잘된 것이고, 남한 쪽은 부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그러나 북한의 토지 개혁 법령은 분배 받은 토지의 매매와 임대를 금지했다. 본인만 농사지을 수 있으며, 남에게 팔거나 빌려줄 수 없는 제한적인 권리 이전이었다. 친일파 토지를 빼앗아 나눠줬다는 표현도 올바른 기술이 아니다. 직접 농사짓지 않고 소작을 주었던 농지에 대해서는 소유주가 누구인지에 상관없이 무조건 몰수했다.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사람을 친일파로 몰아 토지를 빼앗기도 했다. 그나마도 1954년 협동농장 도입과 함께 모든 토지는 국유화되고 말았다. ‘무상 몰수 무상 분배’ 표현은 학생들에게 오해의 소지가 크다.
두 글을 근거로 소련군은 조선을 해방하러 온 군대로, 미군은 점령군으로 규정하는 시도는 꽤 오랜 역사를 지닌다. 맥아더의 포고령은 ‘38선 이남은 당분간 본관의 권한 아래 있다’로 시작한다. 소련군의 글은 우호적으로, 미군의 글은 위압적으로 느껴진다. 광복 직후 남한의 좌익 세력과 김일성은 두 포고문을 내세워 소련군을 해방군으로 치켜세웠다.
6월 민주항쟁 직후인 1987년 9월에도 한 명문대 총학생회가 ‘민주광장’이라는 유인물에서 ‘점령군인가 해방군인가’라는 제목으로 두 포고문을 나란히 싣고, 소련군을 해방군으로 부각시켰다가 비판을 받았다. 2008년 좌편향 논란을 빚은 금성출판사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도 두 포고문을 함께 실었다. 이 교과서는 ‘두 글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해 보자’고 학생들에게 제안했다.
소련군이 해방군 아닌 약탈군이었음은 북한 주민의 수많은 증언으로 당시 이미 밝혀졌다. 옛 소련 붕괴 이후 공개된 소련군 내부 보고서는 더 적나라하게 전한다. 1945년 8월부터 북한에 있었던 소련군의 페드로프 중좌는 ‘우리 군인의 비도덕적 행태는 끔찍한 수준이다. 사병 장교 할 것 없이 약탈과 폭력을 일삼고 비행을 자행하고 있으나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썼다. 사정이 이렇다면 소련군 포고문은 교과서에 실릴 가치가 없다.
1948년 12월 유엔이 대한민국을 승인할 때 채택한 결의문에 대한 엉터리 기술도 되풀이되고 있다. 결의문은 대한민국을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 정부’라고 분명히 밝혔으나 2종의 새 교과서는 ‘선거가 가능했던 한반도 내에서 유일한 합법 정부’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결의문을 제대로 읽어보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