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가 그린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1907년)은 한국인들에게 꽤 익숙하다. 유명 해열진통제의 포장지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원래는 나치가 1938년 빈의 유대계 부호였던 블로흐바우어 가족에게서 강탈한 미술품이었다. 2차 대전이 끝나면서 오스트리아 정부가 보관해왔으나 원 소유주 후손이 8년간의 소송 끝에 2006년 돌려받았다. 같은 해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1억3500만 달러, 당시로선 회화 작품 사상 최고가로 낙찰됐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17세기 화가 베르메르의 대표작이다. 몇 년 전 같은 제목의 소설과 영화가 나오면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화가다. 그의 작품을 언급할 때면 네덜란드 위작화가 판 메이헤른의 사연이 감초처럼 등장한다. 메이헤른은 완벽한 위작 솜씨로 미술관도 감쪽같이 속아 넘겼지만 결국 스스로 범죄를 자백해야만 했다. 전후에 베르메르의 국보급 작품을 나치에 넘겼다는 ‘반역’ 혐의로 재판을 받으면서 어쩔 수 없이 위조범임을 실토한 것이다.
▷세기의 독재자 히틀러가 화가 지망생이었던 탓일까. 나치는 1930, 40년대 유대인이 소장한 숱한 미술품들을 강탈해갔다. 최근 독일 뮌헨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약탈 미술품 1500여 점이 발견됐다. 전후에 찾아낸 것 중 최대 규모이고 그 가치가 1조4000억 원이 넘는다. 이들 작품은 나치의 미술품 수탈에 동조했던 수집가가 빼돌린 작품들로서 그 아들이 숨겨두고 있다 세무서의 가택 수색에서 들통 난 것이다.
▷80년 만에 피카소 마티스 샤갈 등 거장의 그림들이 햇빛을 보게 됐다는 소식에 전 세계가 떠들썩하다. 작품 목록이 밝혀지는 대로 반환 소송도 줄줄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문화적 약탈을 추적한 책 ‘보물추적자’를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약탈 행위는 단지 한 세대에 대한 모독으로 그치지 않는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행위는 한 민족 전체의 역사적 감성에 가해진 상처와 같다.” 해외로 나간 우리 문화유산이 유랑을 마치고 귀향하는 날은 언제쯤일지….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