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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시교육청 “직업학교 설립” vs 주민들 “절대 안돼”

입력 | 2013-11-06 03:00:00

옛 영동中 용지 활용방안 놓고 시끌




5일 서울 서초구 서초2동 옛 영동중학교 강당에서 서울시교육청이 문화예술정보학교(옛 직업학교) 설립과 관련해 주민설명회를 열고 있다. 강당을 메운 주민들은 “교육청이 지역 주민의 요구도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했다”며 반발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중학교가 없어져 우리 아이들도 동네 학교에 못 다니는 판에, 그 자리에 ‘직업학교’를 짓는다니요.”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2동 옛 영동중학교 강당. 서울시교육청이 옛 영동중 터에 1년제 산업정보학교(옛 직업학교)를 설립하겠다며 주민설명회를 열자 곳곳에서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강당을 가득 메운 주민 300여 명은 “교육청이 이미 다 결정해 놓고 내용만 통보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서초동 주민들이 분개하는 사정은 이렇다. 서초구 우면동 보금자리주택지구가 들어서면서 시교육청은 학교를 신설하는 대신 서초2동에 있던 영동중을 우면동으로 이전하기로 2011년 결정했다. 우면동에는 학생 수요가 증가하고, 서초2동은 학생 수가 줄고 있다는 이유였다. 학생 250여 명은 서운중 등 인근 학교로 전학했고, 학교는 올해 3월 우면동으로 이전했다. 이후 학교 용지는 폐교처럼 방치됐지만 강남 한복판의 알짜배기 터 1만6610m²의 활용 방법에 대해 주민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하지만 시교육청이 최근 이 자리에 ‘서초문화예술정보학교’를 신설하기로 확정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이 학교는 서울 시내 일반계 고교 3학년 학생에게 졸업과 동시에 취업할 수 있는 직업교육을 시행하는 게 목적이다. 실용음악, 조리아트, 미용예술, 컴퓨터정보 등 4개 과정에 240명을 모집해 내년에 개교할 계획이다.

그러자 주민들은 지역 실정과 주민 정서를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결정이라며 발끈하고 나섰다. 주민 주경수 씨(45)는 “영동중 이전으로 우리 아이들은 가까운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됐고, 인근 서운중 등은 과밀 학급이 돼 교육 환경이 악화된 상황”이라며 “학생 수가 400명밖에 안돼 운영이 어렵다며 학교를 옮겼던 교육청이 240명을 위한 1년제 단기학교를 운영하겠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는가”라며 항의했다.

주먹구구식의 근시안적인 결정이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2개 교사동 중 1개만 리모델링해 사용하겠다는 계획만 있을 뿐 운동장과 나머지 교사동에 대한 활용 계획은 아직 없는 상황이다. 김병민 서초구의원(새누리당)은 “전체 용지에 대한 장기로드맵이 없는 상태에서 교육청의 단기 정책인 직업교육 실시를 위한 대안 마련으로 급하게 추진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우성 1∼3차, 신동아, 무지개아파트 등 3000여 채의 재건축 계획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재건축이 끝나면 인구가 3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미래인구 유입 상황을 면밀히 고려해 그에 적합한 학교 신설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면에는 ‘직업학교’가 들어올 경우 교육 환경 이미지가 나빠질 것이라는 주민의 우려도 적지 않은 것 같았다. 강당 곳곳에서 “우리가 왜 강남에 사는데” “강남에서 죽어라 공부시켜서 우리 애를 여기 보내라고?” 등의 얘기들이 들렸다.

이에 대해 유영환 강남교육지원청 교육장은 “문화예술정보학교는 혐오시설이 아니고 이 지역을 강남·서초의 교육허브로 만들려는 계획의 일환”이라며 “시교육청 땅이고 학교 용지에 학교를 짓는 것이기 때문에 법적 절차를 밟거나 주민 의견을 수렴할 의무가 없다”며 1시간 만에 자리를 떴다. 서초구 측은 “교육청 땅이라 우리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물러섰다. 김 의원은 “법에 따르면 ‘폐교 재산의 활용계획을 수립할 때에는 관계 지방자치단체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며 “서초구는 주민의 의사를 적극 대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