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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重 “영도와 수비크 양날개로 날아오른다”

입력 | 2013-11-07 03:00:00

3년치 일감 쌓여 불황 모르는 필리핀 수비크조선소 가보니




한진중공업이 필리핀 현지에 세운 수비크조선소 전경. 한진중공업 제공

‘신(神)의 한 수(手).’

한진중공업 임직원들이 필리핀 수비크 만에 조선소를 세우기로 한 경영진의 결단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한진중공업 경영진이 2005년 수비크조선소 프로젝트를 추진키로 결정했을 때만 해도 회사 안팎에서 조선 경기가 하락하면 애물단지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조선 경기가 살아날 조짐을 보이자 당시 결단이 신이 바둑을 둔 것처럼 전화위복이 됐다는 뜻이다. 한진중공업이 2006년부터 19억 달러(약 2조 원)를 투입해 세운 수비크조선소는 글로벌 경기 불황에 따른 선박 발주량 감소, 저가 수주의 유혹, 한국 정치권의 소모적 정쟁에 따른 사업 환경 악화 등을 이겨내고 순항하고 있다.

○ 3년치 일감 쌓여

5일 오전(현지 시간)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버스를 타고 북서쪽으로 3시간 30분가량 달리자 한진중공업이 필리핀 현지에 총면적 300만 m² 규모로 세운 수비크조선소가 나타났다. 우뚝 선 초대형 골리앗 크레인 4기와 대형 독(dock)이 눈에 들어왔다. 길이 550m, 폭 135m, 깊이 13.5m로 세계 최대 규모인 6번 독에서는 선박 4척이 동시 건조 중이었다. 총길이 4km에 이르는 10개의 안벽(배가 접안하는 벽)에서는 독 공정을 마친 배 10척에 대한 추가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수비크조선소는 우기에 비가 내리는 열대지방 특성을 고려해 대부분의 생산라인에 ‘셸터’라 불리는 지붕을 세웠다. 덕분에 1만8000여 명의 현지 근로자들은 비가 내려도 작업을 계속할 수 있다. 수비크조선소는 2016년까지 독을 비우지 않고 작업할 수 있는 38척의 수주 물량이 남아 있다.

최근에는 해양플랜트 사업 진출에도 힘쓰고 있다. 6번 독에는 바다 위 호텔을 의미하는 해양플랜트 ‘플로텔’이 건조되고 있다. 하용헌 HHIC-PHIL 생산부사장은 “국내 최초로 석유시추선을 만든 경험과 세계 최고의 생산기술이 있지만 대지면적이 26만 여m²에 불과한 영도조선소의 물리적 한계 때문에 해양플랜트 사업 진출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라며 “수비크조선소를 이용한 해양플랜트 사업 수주에 더욱 속도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 수비크조선소와 영도조선소는 ‘양 날개’

한진중공업은 협소한 영도조선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수비크 만을 선택했다. 1992년까지 미국 해군기지가 있었던 탓에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었다. 수심도 조선소를 세우기 적당했다. 넓은 터는 물론이고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현지 인력을 한국의 10분의 1 수준에도 미치지 않는 인건비(월평균 30만∼50만 원 수준)로 고용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었다. 한진중공업 건설부문이 1973년 필리핀에 진출한 이후 필리핀에 40년 동안 확고한 기반을 구축한 점도 도움이 됐다. 정철상 한진중공업 홍보담당 상무는 “대지 사용료를 월 1000만 원대로 선정하고 향후 5년간 현지 한진중공업 동의 없이는 현지 근로자 전직을 불가능하게 해준 필리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도 힘이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비크조선소도 부산 영도조선소 없이는 잘 돌아갈 수 없다. 수비크조선소에서 건조되는 선박의 설계는 영도조선소에서 진행된다. 선박 건조에 필요한 부품 85%는 부산 일대 선박 부품공장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선박 자재와 부품을 운송하기 위해 자체 건조한 운반선 2척이 지금도 영도조선소와 수비크조선소를 비정기적으로 오가고 있다.

한진중공업 관계자는 “수비크조선소와 영도조선소가 함께 살아야 글로벌 리더로 갈 수 있는 것”이라며 “한진중공업이 영도조선소를 매각하고 떠날 것이라는 소문은 일부 정치인의 말장난”이라고 말했다.

수비크조선소에도 고민은 있다. ‘눈을 감고도 완벽히 용접할 정도’라는 영도조선소 인력 수준의 30% 정도에 불과한 현지 인력의 생산성을 개선해야 한다. 규칙적 근무로 한 달에 한 번 급여를 받는 ‘직장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현지 인력들이 쉽게 직장을 그만두는 사례가 적지 않다. 한진중공업 관계자는 “한국과 다른 현지인들의 근로 문화를 개선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며 “현지 인력에게는 월급을 두 번(매달 5일과 20일)에 걸쳐 나눠주고, 장기근속을 장려하기 위해 주택 지원 등 복지혜택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비크=장관석 기자 j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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