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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선 인권은 뒷전 성적에 눈 먼 구단들

입력 | 2013-11-07 07:00:00

박은선의 성별 의혹을 제기한 WK리그 구단들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서울시체육회는 7일 기자회견을 통해 인권침해와 명예훼손 등 법적 대응을 밝힐 예정이다. 스포츠동아DB


여자축구 감독들 성별 확인 요구 파문

여자축구선수 박은선(27·서울시청)의 성별 논란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논란의 시발점은 지난 주 서울시청을 뺀 WK리그(여자축구리그) 6개 구단 감독들의 비공개 간담회였다. 감독들은 박은선의 성 정체성을 확실히 해달라는 입장을 여자축구연맹에 구두 통보했다. 무기는 내년 리그 보이콧이었다. 여론이 악화되자 여자연맹은 6일 예정된 단장 간담회를 연기했다. 당초 A구단이 대표 자격으로 ‘박은선의 성별을 짚어야 한다’는 문건을 만들어 단장들 사인을 받아 여자연맹에 전달할 예정이었다. 이 사안이 미리 알려지지 않았다면 선수 성별 확인 요청이란 초유의 사태가 빚어질 뻔 했다. 박은선이 속한 서울시체육회는 7일 기자회견을 갖고 지도자들의 심각한 인권침해 및 명예훼손 등 법적 대응과 함께 축구협회 차원의 책임 있는 조처를 요청할 계획이다.

● 성별논란 넘어 인권논란으로

7월 동아시안컵 대회가 열릴 무렵 B구단이 대한축구협회에 “왜 박은선을 대표팀에 뽑지 않느냐”는 공문을 보냈다. 이 때만 해도 조용했다. 불씨가 되살아난 건 박은선이 WK리그에서 보인 활약이었다. 180cm, 74kg으로 월등한 신체조건을 가진 박은선이 19골을 몰아치자 상대팀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감독들은 “박은선이 뛰면 선수 부상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댔지만 구차한 변명이었다. 진짜 불만은 서울시청의 선전이었다. 또 대표팀 발탁은 축구협회 기술위원회와 여자대표팀 윤덕여 감독의 고유 권한이다. WK리그 감독들이 나설 이유가 없다. 더 한심스러운 건 구단들의 비겁한 행태다. 모두 “이번 일을 주도한 적이 없다”고 발을 뺀다. 일각에선 “구단 윗선이 모르는 곳도 있다”고 하지만 리그 보이콧 같은 사안을 감독들이 독단으로 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다.

팬들은 “성적을 위해 소중한 가치(인권)를 짓밟아도 되느냐. 승리에 걸림돌이 되면 무차별 인신공격을 해야 하냐”고 분노했다. 축구협회의 어정쩡한 대처도 화를 키웠다. 2010년 5월 여자 아시안컵 직전 개최국 중국이 박은선의 성별을 거론했을 때 확실히 맞서야 했다. 당시 한국은 박은선을 대표팀에서 제외시켰다.

이제 박은선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자신의 SNS 계정에 남긴 "성별 검사를 월드컵, 올림픽 때도 받아 출전하고 다 했다. 어린 나이에 수치심을 느꼈는데, 지금은 말할 수도 없다"는 글에는 비통함이 묻어나왔다.

느닷없이 불거진 성별논란, 이어진 인권논란, 이 모든 혼란을 일으킨 책임은 과연 누가 질 것인가.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트위터 @yoshik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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