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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한국식 밤11시 회진… 미역국… 미국서도 통했다

입력 | 2013-11-07 03:00:00

차병원, 만성적자 美병원 인수 2년만에 흑자전환 성공비결은




차병원그룹은 미국 서부지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장로병원을 2004년에 인수해 2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켰다. 철저한 현지화에 ‘한국식 친절 서비스’와 ‘야간 회진’을 더해 미국인 환자들을 감동시켰다. 사진은 차병원그룹 특유의 환자맞춤형 진단 장면. 차병원그룹 제공

한국 병원이 ‘의료 강국’ 미국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현실성이 낮은 얘기일 것 같지만 실제 성공한 사례가 있다. 불임·난임 시술 특성화병원으로 시작해 줄기세포치료와 재활의학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춘 우리나라 차병원이 미국에서도 ‘CHA’라는 브랜드를 달고 승승장구하고 있다. 보기 드문 한국 의료기관 해외 진출의 성공 사례다. 차병원은 문화적·제도적 차이를 충분히 연구하면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현지 시장에 접근해 한국 의료산업의 글로벌화 가능성을 보여줬다. DBR 139호(10월 15일자)에 실린 차병원 미국 진출 사례 분석 기사의 주요 내용을 요약한다.

○ 만성적자 병원을 인수 2년 만에 흑자로

차병원그룹의 미국 진출 성공 스토리는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미 1999년 미국 동부 컬럼비아대 초청으로 불임 관련 연구진을 파견해 둔 차병원그룹은 미 서부 지역으로 눈을 돌렸다. 이어 2002년 줄기세포 연구가 비교적 자유로운 로스앤젤레스 지역에 불임센터까지 만들었다. 그리고 2년 뒤, 80년 전통에 434병상을 갖춘 ‘할리우드장로병원’이 매물로 나왔다. 당시 매출 1조 원이 넘던 병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매출 1조 원이 넘는 병원은 5곳이 채 안 되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규모의 종합병원이었다. 만성적자였던 할리우드장로병원은 차병원그룹이 인수한 지 2년 만인 2006년에 흑자로 돌아섰다.

○ ‘철저한 현지화’에 성공했다.

차병원은 제도와 문화가 완전히 다른 미국 의료시장을 철저히 분석해 현지화에 성공했다. 미국 최고의 보험 전문가와 의료기관 경영 전문가들을 고용해 미국식 보험제도와 의료산업에 적응했다. 또 ‘주치의’격인 지역사회 ‘클리닉’ 운영 의사들이 고객 확보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점을 깨닫고 이들을 집중 공략했다. 다인종·다민족 사회에 맞는 전략도 찾아냈다. 전통적인 주류사회 백인과 흑인, 그리고 일본인과 한국인, 새롭게 형성된 거대 커뮤니티인 아르메니아계 사람들에게 각각 맞는 마케팅 전략을 썼다. 신중한 일본인은 합법적 브로커를 통해 공략했다. 자체 방송국이 많고 TV를 즐겨보는 아르메니아계를 위해서는 해당 방송국 유명 토크쇼 시간대에 광고를 집중했다. 주류사회 백인들에게는 ‘전통의 할리우드장로병원이 최신 차병원그룹의 기술과 시설로 거듭났다’는 사실을 알려 이미지 쇄신에 성공했다.

○ ‘한국식 병원의 강점’을 더했다.

현지화에 한국식 병원의 강점을 더한 게 차병원그룹의 두 번째 성공 비결이다. 차광렬 차병원그룹 회장은 할리우드장로병원 인수 직후 2년간 병원 내에 상주하다시피하며 너무도 당연한 듯 오후 11시에 회진을 돌았다. 퇴근 시간 이후에 병원 오너가 직접 회진을 하자 현지 의사와 직원들은 당황했다. 그러나 한국 병원 특유의 회진 시스템과 환자 관리 체계를 설명하자 이내 수긍했다. 과별로 오후 11시 회진이 공식화됐고 환자들은 안도감을 느끼며 언제든 불편사항을 말할 수 있게 됐다. 한국 병원에서는 당연한 ‘산부인과 병동 미역국 제공’ 역시 미국 환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한국에서 직접 재료를 엄선해 공수해 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진정성이 통한 것이다.

○ 적합한 진출 전략을 선택했다

차병원그룹이 미국 의료시장에서 성공한 이유로 ‘진출 방식’ 자체가 적합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의료산업은 첨단 기술과 학문이 적용되는 동시에 높은 신뢰를 필요로 하는 일종의 ‘신뢰산업’이다. 그동안 한국의 우수한 의료 기술과 ‘한류 열풍’만을 믿고 병원 신설, 프랜차이즈, 공동 운영 등의 방식으로 해외에 진출했던 의료기관들은 ‘신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번번이 쓴맛을 봤다. 그러나 차병원그룹은 대형 병원을 인수하는 방식을 택했다. 인수 대상이었던 할리우드장로병원은 남캘리포니아 지역 3대 종합병원으로 역사와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미국에서 일반 고객들이 한국 병원의 수준을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환자의 신뢰를 쉽게 확보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진출 대상국의 의료수준과 문화적 특성, 각종 규제정책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가장 적합한 진출 전략을 찾는 것이 의료기관 해외 진출 성공의 관건임을 보여준다.

○ 새로운 경쟁력을 계속 찾아냈다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장로병원이 오랜 역사와 신뢰성 있는 브랜드였던 건 사실이지만, 병원으로서의 경쟁력 자체는 약화되는 상황이었다. 차병원그룹은 병원 인수 뒤 환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첨단’이나 ‘활력’ 같은 새로운 이미지를 형성할 필요가 있었다. 차병원은 이미 줄기세포, 불임치료 등 첨단의학 분야에서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었다. 이를 기반으로 산부인과, 소아과, 재활의학과 등에서 높은 경쟁력을 기대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서 젊은층을 중심으로 구전효과를 만들어냈다. 가장 강점이 크고 한인사회와 젊은 환자 공략에 쉬운 산부인과를 시작으로, 신생아과 재활의학과 등 다른 분야로 경쟁력을 키워나갔다.

○ 서두르지 않고 ‘차병원만의 길’을 찾았다.

의료기관이 해외 진출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서두르지 않는 ‘단계별 접근’이 중요하다. 차병원그룹은 1999년 컬럼비아대와 합동연구를 진행하면서 꾸준히 논문을 발표해 인지도를 높였고 2002년에는 로스앤젤레스 불임센터를 열어 서부 지역에서도 존재감을 확산시켰다. 이는 병원 인수 후 빠른 안착에 큰 도움을 줬다. ‘산부인과’ ‘불임’ 등 핵심역량 외에도 한국적인 ‘친절 서비스’와 ‘효율적인 정보시스템’도 강점이 됐다. 미국 병원은 크게 두 가지 성공 방식 중 하나를 택하게 되는데 하나는 존스홉킨스대 의대처럼 병을 잘 치료하는 ‘실력 제일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고객 감동 서비스로 유명한 메이요병원 방식의 ‘친절 제일주의’다. 그러나 차병원그룹은 오후 11시 회진 같은 한국형 친절 서비스를 자신들의 ‘의술 기본기’에 더하면서 독특한 경쟁력을 확보했다. 선진 시장에 진출할 때 무작정 그들의 방법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한국 기업 특유의 강점을 적절하게 조합할 때 더 큰 도약을 이뤄낼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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