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합동축제 ‘베세토연극제’ 초청된 ‘다정도 병인 양하여’ 연출 성기웅씨
성기웅 연출은 극 막바지에 무대로 올라와 묵묵히 객석을 응시한다. 주인공 ‘성기웅’의 대사는 뒤에 앉은 배우가 읽는다. 그는 “일본 종이연극 가미시바이(紙芝居)처럼 소리와 이미지를 분리해 관객의 자유로운 상상을 개입시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도쿄=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5일 일본 도쿄 신국립극장 무대에 오른 한국 연극 ‘다정도 병인 양하여’. 베세토연극제 제공
―한국적 일상에 익숙해야 눈치 챌 수 있는 코미디 요소에 족족 때맞춰 웃음이 터지더라.
―주인공 ‘성기웅’이 여러 남자와 동시에 연애하기를 즐기는 ‘다정’이라는 여인과 함께했던 시간을 되짚는 이야기다. 다정을 2명의 배우로 분리한 까닭이 뭔가.(이날 만난 마키코 이시다라는 관객은 “일본에서 보지 못한 스타일이라 흥미로웠지만 연출이 전달하려는 바를 따라가기 힘들었다”고 했다.)
“나는 왜 연극을 하는 걸까. 그 고민은 ‘연극으로만 할 수 있는 게 뭘까’라는 고민으로 이어진다. 연극은 사실적 표현이 어려운 장르다. 영화처럼 비가 오게 할 수도, 연기자의 다양한 심리를 빠르게 교차해 보여줄 수도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객은 표현의 제약과 그에 따른 연극적 약속을 이해한다. 그걸 믿고 이용하는 거다. 실제를 흉내 내기보다 관객이 나름의 해석으로 채울 부분을 만들고 그 폭을 조율한다. 한 인물을 두 배우로 분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주인공 성기웅이 실제 성기웅과 얼마나 겹치는가도 관객을 고민하게 만든다.
“처음 연극을 시작했을 때는 일상적 리얼리티에서 벗어난 표현이 싫었다. 그런데 무대 경험을 쌓다 보니 리얼리티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더라. 실제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처럼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 연극적 변형 아닐까. 이 연극이 실제 성기웅의 이야기인지는 관객의 재미를 위해 밝히지 않는 편이 좋다. 12월 서울 국립극단 재공연을 마치고 기회가 닿으면 말하겠다.”
“‘나쁜 여자’에게 끌리는 편이었다. 다정처럼 주장 강하고 약간 못되게 구는 여자. 경험담인지 아닌지는 말할 수 없지만 어디선가 실제로 벌어진 연애 이야기가 재료인 건 틀림없다.”
―지금도 나쁜 여자 좋아하나.
“하하. 그 취향, 버리려 한다. 어머니께서 내 연극 중 유일하게 안 보신 작품인데, 뭐라 하실지 궁금하다.”
―연극을 매개로 한 국제 교류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도쿄=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