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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의 3000배 못난 자식은 알까… 깨진 건 무릎이 아니라 정성이어라

입력 | 2013-11-07 03:00:00


수십만 수험생의 운명이 엇갈리는 대입 수능시험일. 올해도 언론에 단골로 등장할 이미지가 있으니 바로 대구 팔공산 갓바위 앞에서 자녀의 대입 합격을 발원하며 오체투지(五體投地)하는 수험생 어머니의 모습이다.

‘더도 바랄 것 없이 실력만큼만 잘 치르게 해주십사’ 하는 기도가 부처님 전에 전해지도록 어미는 무릎이며 허리가 지르는 비명도 듣지 못하고 올해도 기어이 1000배를 채우리라. 그런데 이런 지극정성도 ‘나 몰라’라 하고 자식 녀석이 거푸 낙방해 장수생(長修生)이 되었다면? 어미의 속이 까맣게 타버리기 전에 무릎부터 고장 나지 않을까?

권혁웅 시인 동아일보DB

‘이달에 만나는 시’ 11월의 추천작은 권혁웅 시인(46)의 시 ‘슬하(膝下) 이야기’다. 지난해 미당문학상 수상자이자 시단의 ‘미래파’ 논쟁을 주도하는 문학평론가인 권 시인이 ‘소문들’ 이후 3년 만에 펴낸 시집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창비)에 실렸다.

시인이 한때 과외를 했던 삼수생의 어머니에게서 들었던 하소연이 시상(詩想)이 됐다. 독실한 불자인 이 어머니는 꿋꿋이 삼수한 아들 덕분에 매년 1000배씩 총 3000배를 해야 했다. 시인은 “어린 자식을 ‘슬하의 자식’이라고들 하는데 그 자식이 어미의 무릎을 망가뜨리는 상황을 조금은 코믹하게 그리려 했다”며 “사람의 무릎뼈가 앞에서 보면 꼭 계란처럼 생겨서 ‘계란이 깨졌다’고 표현했다”고 말했다.

손에 만져질 듯한 생생한 시어가 백미인 시인의 작품답게 현실감이 묻어나는 모자간의 일상대화가 독자의 시선을 붙든다. 복장이 터져 “이눔아, 니 에미를 잡아먹어라”고 어미가 하소연해도 아들은 “내가 어떻게 엄마를 먹어? 그 대신 계란프라이나 먹을래” 하고 능구렁이처럼 대꾸한다. 부처님께 지극정성 발원한 결과라고 하기엔 얄궂은 현실이다. “사실 무릎(계란)만 깨진 게 아니라 어머니의 정성이 깨진 상황이잖아요.”

추천위원인 이건청 시인은 “권혁웅은 지근거리의 시적 대상들을 까마득한 미궁의 황홀로 바꿔 보여주는 데 능란한 솜씨를 지녔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장석주 시인은 “익숙한 자명성 때문에 우리가 놓친 현실의 구체적 세목들을 붙잡아 내고, 거기에 촌철살인의 유머와 따뜻한 연민을 뒤섞는다”고 평했다. 이원 시인은 “낱낱이 보이고 빠짐없이 들리고 느닷없이 흔들리게 하는 생생함을 4차원 언어로 구현해 냈다”고 말했다.

손택수 시인의 선택은 박형준 시인의 시집 ‘불탄 집’(천년의시작)이다. “박형준의 시는 상실의 열기를 품고 이슬점에 이른 자의 서늘한 표면장력으로 글썽이고 있다. 그 투명한 물방울에 검게 탄 얼굴을 씻는다”고 평했다. 김요일 시인은 문형렬 시인이 오랜 공백 끝에 펴낸 시집 ‘해가 지면 울고 싶다’(기파랑)를 추천했다. 그는 “문형렬의 보석 같은 시편들은 소월 이후 발표됐던 어떤 사랑시보다 애절하고 곡진하고 고통스럽다. 23년 만에 펴내는 시집이기에 슬픔은 더 깊고 그리움은 더 처량하다”고 했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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