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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김상훈]“어머니들, 수고하셨습니다”

입력 | 2013-11-07 03:00:00


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오늘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다. 대한민국에서는 ‘인생을 좌우하는’ 시험이다. 이 한 번의 시험을 위해 수험생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12년 이상 공부에 매달렸다.

시험 결과가 좋다면 금상첨화. 하지만 그와 관계없이 수험생들은 오늘 저녁부터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해방감을 누리게 될 것이다.

유통업계가 일제히 그런 수험생을 겨냥한 마케팅을 시작했다. 수험표를 가지고 오면 제품을 할인 판매하는 이벤트는 이미 연례행사가 돼 버렸다. 경품을 얹어주는 행사도 흔해졌다. 놀이공원에서는 입장료를 깎아준다. 수험생을 위한 각종 할인 티켓도 넘쳐난다.

미용성형업계는 대목을 맞은 분위기다. 피부과나 성형외과, 치과, 비만클리닉이 잇달아 사이트에 수험생 할인행사 공지를 올리고 있다.

한 피부과는 수험표를 지참하면 보톡스와 필러, 지방이식 시술을 10%, 레이저를 이용한 여드름 치료를 20% 할인해 준다고 광고하고 있다. 어떤 성형외과는 할인 금액까지 구체적으로 밝히며 수험생 고객 유치전에 나섰다. ‘쌍꺼풀 수술 45만 원 할인, 눈매 교정 90만 원 할인, 앞트임 시술 65만 원 할인, 코 성형 140만 원 할인.’ 이 밖에도 치아 미백이나 치아 교정, 라미네이트 시술 비용을 할인해 준다거나 비만약침과 지방분해침 시술 비용을 20% 깎아준다는 의원도 많다.

자신들을 위한 이벤트가 넘쳐나니 수험생은 세상의 주역이 된 듯한 느낌을 맛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수험생보다 마음고생을 더 많이 한 수험생의 어머니를 위로해 주는 이벤트는 별로 찾아볼 수 없다. 어머니들은 최종 합격 여부가 결정되는 내년 1월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자유를 만끽하는 자식들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갓 태어난 새들은 둥지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어미 새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먹이를 잡아다 새끼들의 입에 넣어준다. 그 새끼들이 어느 정도 자라면 어미 새는 날갯짓을 가르친다. 홀로 날 수 있는 새는 둥지를 떠나 훠이훠이 날아간다. 둥지는 텅 비어버린다.

이에 빗대 만들어진 용어가 ‘빈 둥지 증후군’이다. 평생 자식 뒷바라지에 매달려야 하는 우리나라 어머니들의 심정을 적확하게 표현한 말이다. 아이가 성장해 독립하면 어머니가 느끼는 허탈감과 상실감은 커진다. 쓸쓸함과 고독이 밀려온다. 심하면 식사를 아예 거르거나, 반대로 폭식을 한다. 이 빈 둥지 증후군의 시작이 수능 시험 직후에 나타난다.

그래도 아이가 시험을 잘 치르고,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기만 한다면야 어머니는 행복하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는 빈 둥지 증후군이 꿈틀대고 있을지라도 말이다.

시험 결과가 불만족스럽다면 수험생이나 어머니나 모두 실망할 수밖에 없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에 따르면 어머니들이 더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심지어 병원을 찾아 상담을 받는 어머니도 있다.

시험을 잘 못 치른 수험생은 어머니에게 화풀이를 한다. 하지만 어머니들은 자식이 상처를 받을까 봐 속으로 삭이며 끙끙 앓을 뿐이다. 이러니 대한민국의 어머니가 화병에 걸리지 않겠는가. 그동안 뒷바라지를 해 주신 어머니에게 감사의 인사라도 건네면 좋으련만, 철부지 자식들은 그러지 않는다.

남편의 역할이 중요할 때다. 오늘만은 회식이며 약속을 모두 취소하라. 퇴근하자마자 바로 집으로 달려가자. 아내에게 “그동안 정말로 고생 많이 했소”라며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를 건네자. 그게 지금 남편이 해야 할 일이다.

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