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컴퓨터 창조경제의 첫 단추]<중>中企 R&D의 필수장비
KISTI 연구자가 슈퍼컴퓨터 4호기 시스템을 점검하고 있다. 초당 300조 회를 연산할 수 있는 총 성능 300테라플롭스(Tera Flops)급으로 세계 107위의 성능을 갖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제공
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다름이 아닌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슈퍼컴퓨터 4호기. 제작사가 보유한 컴퓨터로는 처리속도가 느려 마감시간을 맞추지 못할 뻔했는데, 연산 장치인 코어가 100개에 저장 용량이 50TB(테라바이트)인 슈퍼컴퓨터는 4년 걸릴 작업을 4개월 만에 끝내 버렸던 것이다. 또 2009년 개봉해 220만 명의 관객을 불러 모은 영화 ‘국가대표’가 슈퍼컴퓨터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유명하다.
연구용으로만 알려져 있던 슈퍼컴퓨터는 이렇듯 영화 제작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연구개발(R&D)에 필수 장비로 자리 잡고 있다.
슈퍼컴퓨터가 중소기업 R&D에 많이 쓰이는 이유는 큰 용량과 빠른 속도를 이용해 컴퓨터 속에서 가상의 제품을 만들어 작동해 보는 ‘모델링 및 시뮬레이션(M&S)’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기술은 바이오 벤처기업들의 R&D에도 도움이 된다. 최근 KISTI가 변이가 많아 예측이 어려운 독감 바이러스를 예측할 수 있도록 돕는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심플루’를 개발한 것도 같은 차원이다.
슈퍼컴퓨터는 제품 개발 기간과 비용도 대폭 절감해 준다. 바이오기업 ‘진인’은 세균의 감염 진행 정도를 판별하는 DNA칩을 개발했는데,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덕분에 R&D 기간이 예상했던 21개월에서 2개월로 줄었다. 또 공기순환장비 업체 ‘가교테크’는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평균 12억 원 수준이던 신제품 개발비를 1억2000만 원으로 낮출 수 있었다.
이식 KISTI 슈퍼컴퓨팅전략실장은 “올해만 29개 업체를 지원하는 등 2004년 M&S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337개 기업을 도왔는데 신청 업체가 점점 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벤츠, BMW 등 유명 자동차 메이커가 모여 있는 ‘자동차 왕국’ 독일은 기업의 제품 생산에 슈퍼컴퓨터를 활용하는 데 가장 적극적이다. 독일 3대 슈퍼컴센터 중 하나인 슈투트가르트대 고성능컴퓨터센터(HLRS)는 사실상 자동차 전문 연구기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베 베스너 HLRS 시각화연구실장은 “자동차 주변 공기 흐름을 가상현실로 연구해 포르셰 박스터, BMW 미니, 아우디 A8 등의 명차를 탄생시켰다”고 설명했다.
국제컨설팅업체 ‘IDC’의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업이 슈퍼컴퓨터에 1달러 투자하면 38달러의 이익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지수 KISTI 국가슈퍼컴퓨팅연구소장은 “미국 프링글스사에선 감자칩 모양을 설계할 때도 슈퍼컴퓨터를 사용할 정도로 기업의 R&D에 필수인 장비가 바로 슈퍼컴퓨터”라고 말했다.
대전=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