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기술이 미래먹거리]<1>과학-산업 융합해야 BT강국
최귀원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의공학연구소장은 1995년을 생각하면 아직도 입맛이 쓰다. 당시 최 소장은 수술용 의료 도구에 항생제를 코팅해 염증을 방지하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그러나 의료기기 회사와 제약회사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지만, 다들 ‘우리 영역이 아니다’라며 거절해 사업화로 연결하지 못했다. 그렇게 수년이 흘러 미국 ‘보스턴 사이언티픽’사에서 비슷한 기술을 개발하고 국제특허를 등록해 시장을 독식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국내 한 제약회사는 지난해 심근경색 치료제를 개발했지만, 치료 대상 환자가 5%에 불과하고, 1회 투약 비용도 1800만 원에 달해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거의 적용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약의 적용 범위를 넓히고 약가를 낮추기 위해 새로운 성분으로 약을 만들려고 하지만, 기초연구부터 대규모 임상시험을 다시 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우리나라 BT 분야에서 뛰어난 학문적 성과는 자주 나온다. 그렇지만 문제는 이를 사업화로 연결하는 고리가 약하다는 것. 신약 개발 분야는 소관 정부 부처가 연구 단계에 따라 다르다는 것도 문제다. 신약후보물질 연구는 미래부, 임상시험은 보건복지부, 사업화는 산업통상자원부로 구분돼 있다. 이 같은 불편을 해결하고자 정부는 2011년부터 신약 연구 성과의 사업화를 위해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
임요업 미래부 미래기술과장은 “정부의 BT 투자 원칙은 30년 전인 1983년에 처음 만든 ‘생명공학육성법’에 근거하는데, 이에 따르면 사업화보다는 기초 연구지원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 연구 초기부터 사업화를 염두
올해 1437억 원에 이어 내년에는 10% 증액한 1632억 원을 투입하는 방식으로 매년 규모를 늘려, 2017년까지 총 1조 원가량을 투자하겠다는 것. 특히 제약 분야에서 세계 시장에서 한 해 10억 달러(약 1조10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내는 ‘혁신적 신약’을 내놓고, 혈액검사만으로 치매 판정이 가능하거나 항암제 부작용을 줄이는 등의 실질적 산업적 성과를 도출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철 지난 관련 법령 개선도 함께 추진한다.
이번 BT 육성 방안의 핵심은 기획 단계부터 실용화 가능성이 높은 과제를 선정하고, 초기 연구부터 기업인과 의료인이 공동연구자로 참여해 ‘즉시 쓸 수 있는 기술’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현병환 전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장은 “이전까지는 정부의 연구 지원 목적이 논문을 내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사업화에 방점을 찍겠다는 의미로 보인다”며 “미국이나 유럽처럼 기초연구 성과를 직접 사업화할 거대 기업이 없으니 정부의 관심과 전략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