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커플의 상처 치유…김재범·심은진 등 열연
좋은 공연 한 편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삶을 바꾼다. 소소한 것이어도 괜찮다. 무대 위 캐릭터의 대사 한 마디, 몸짓 하나에 보는 이의 머릿속에서는 ‘탁’하고 불이 들어온다. 그것은 운명처럼 관객의 가슴을 노크한다. 똑똑똑.
연극 연애시대는 ‘예쁜’ 작품이다. 아이의 유산을 계기로 이혼했지만 여전히 상대를 우주만큼 마음에 품고 있는 두 사람의 이야기다. 리이치로(김재범·조영규·이신성 분)와 하루(황인영·심은진·손지윤 분)의 사랑은 우리들에게는 다소 낯선 사랑일지 모른다.
툭툭거리는 대사들이 마음을 시큰하게 건드린다. “결혼이란 건 한 방의 공기를 둘이 나눠 마시는 거라고. 조금은 숨이 막히는 게 당연하지”와 같은 대사를 쓸 수 있는 작가(노자와 히사시)는 분명 천재일 것이다.
● 두고두고 남을 리이치로·하루의 이별장면
책갈피에 꽂아두고 싶은 장면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백미. 이혼 후 ‘쿨’하게 지내던 리이치로와 하루는 결국 상대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며 다른 남자와 여자를 만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리이치로는 초등학교 동창 다미코, 하루는 자신이 일하는 스포츠센터 고객인 기타지마 교수를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새로운 연인과의 사랑을 확인하고 포옹을 한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이루어진 일이지만, 연출가 김태형은 포옹한 두 커플의 몸을 자연스럽게 돌려 리이치로와 하루의 눈이 마주치게 만든다. 두 사람은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서로에게 미소를 건넨다. 그리고 포옹한 한 손을 풀어 흔들어 보인다. 진짜 이별인 것이다. 어두운 객석 곳곳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기자도 허겁지겁 안경을 벗어 닦는 척 하느라 애써야 했다.
걸그룹 베이비복스 출신 배우 심은진(사진)의 연기도 좋다. 리이치로가 그토록 바라던 가정적인 여인 가스미와 지적이고 순종적인 다미코를 마다하고 왜 하루만을 바라보았는지를 조근조근 설득해 준다. 리이치로와 다미코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르는 장면은 정말 대단했다!
12월 29일까지 서울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공연한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트위터 @ranbi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