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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에서]숭례문 복원 부실… “내탓이오”는 없었다

입력 | 2013-11-08 03:00:00


최근 단청이 떨어져 논란이 됐던 숭례문이 기둥 나무도 갈라지는 참사를 빚었다. 숭례문 2층 문루의 동쪽 기둥이 위아래로 1m 이상 갈라진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목재를 제대로 건조하지 않아 표면은 말랐지만 내부에는 수분이 남아 있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이 떠오른다. 한 명씩 한 명씩 사라져가고 범인은 오리무중. 지금 숭례문이 딱 그런 처지다. 처음엔 단청이 벗겨지더니, 이제는 기둥 나무가 쪼개진다. 다음은 뭐가 문제일까. 헌데 자기 탓이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이런 사태를 누군들 바랐을까. 2008년 화마로 무너진 국보 제1호는 올해 5월 우리 품으로 돌아왔다. 그간 많은 이들이 애썼다는 것을 무시할 마음은 없다. 하지만 숭례문은 5년 공사를 마친 뒤 겨우 5개월이 넘었건만, 최악의 문화재 복원 사례로 기록될 처지에 놓였다.

문화재청이 ‘숭례문 종합점검단’을 꾸려 원인을 규명하겠다니 일단 그 결과를 기다려보자. 다만 책임자들의 해명이 영 찜찜하다. “시간이 부족했다.” “예산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았다.” “해당 기관이 일을 키웠다.”

그런데 그전엔 왜 이런 얘기를 한 번도 안 했을까. 중요무형문화재에다 무슨 장(匠)이라는 분들이 누구 눈치를 본 것은 아닐 테고…. 혹시 이미 이런 우려를 표했는데 우리가 놓쳤나? 5월 복원 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여러 언론과 진행한 인터뷰를 찾아 살펴봤다.

“숭례문은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일으켜 세우는 일이었다. …나무는 한겨울에 매서운 칼바람을 맞으며 전국의 산을 누비고 다닌 끝에 찾아낸 것들이다.”

“국민 모두 자기가 주인이라는 생각으로 문화유산을 내 것같이 아껴야 해요. 주인의식을 갖고 ‘잘못된 점’은 정부에 말할 수 있어야 하고요.”

“화재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전통적인 기법과 재료를 사용하여 ‘원형에 가깝게’ 복원한 것이 이번 숭례문 복구의 가장 큰 의의다.”

“전통 방식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다소 고생스러울 수 있으나 ‘역사적인’ 의미도 있고 미학적으로도 훨씬 아름다워요.”

이제 정부 얘기를 들어보자. 7일 논란이 들끓자 ‘문화재청의 입장’이 나왔다.

“전통 재료의 개발과 보급, 전통 기법의 계승을 위해 법적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겠다. …종합 학술조사 시행과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등 맞춤형 지원 육성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러한 모든 과정은 ‘정확하고 투명하게’ 국민에게 공개하겠다.”

당연한 것 아닌가. 지금까지 안 했다는 게 더 놀랍다. 하나 더, 장인들의 주장과는 뭔가 어긋난다. 시간도 예산도 불충분해 일을 키웠다는데, 앞으로는 정확하고 투명하게 처리할 수 있을까. 숭례문 복원 때 시민들은 몇 대(代)에 걸쳐 키운 나무를 기증하고 해외 동포들은 성금을 모아 보냈다. 서로 발뺌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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