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한국영화, 대박 정점 찍었나

입력 | 2013-11-08 03:00:00


최근 한국 영화 호황이 이어지며 한동안 사라졌던 에로 영화가 붐을 이루고 있다. 인터넷(IP)TV와 케이블TV 등을 동시에 겨냥한 에로 영화들은 호황의 징후다. 사진은 올여름 개봉한 봉만대 감독의 ‘아티스트 봉만대’. 동아일보DB

한국 영화의 호황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어온 흥행 기조가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한국 영화 관람객은 지난해 최초로 1억 명을 넘어섰다. 올해는 지난해에 비해 47일이나 빠른 10월 4일 관객 1억 명을 기록했고, 한국 영화의 3분기 점유율은 64.5%에 이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한국 영화산업이 정점에 근접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점에 이르면 곧 내리막길이라는 것이다.

최근 호황 끝 거품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제작사 관계자들은 “영화계에 숨어 있던 자금들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8월의 크리스마스’ 같은 옛 영화의 재개봉이 이어지고, 사라졌던 에로 영화들이 잇따라 나온다. 극장에만 걸면 흥행이 된다는 말까지 나온다. 외화 수입사들은 외화를 사는 대신 한국 영화 제작에 뛰어들고 있다.

이런 징후들은 2007년과 유사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2000년대 중반 호황을 누리던 한국 영화는 2007년 설익은 기획물이 쏟아지고 흥행에 실패하면서 전체 수익률이 ―40.5%를 기록했다. 수익률이 나빠지면서 영화계에서 자금이 썰물처럼 빠졌다.

동아일보는 이 징후들과 향후 시장 전망에 대한 의견을 전문가 7명에게 물었다. 그중 2명은 내년에 당장 한국 영화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했다.

고정민 홍익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관객 수요가 한계에 이른 점을 지적했다. 2012년 영화진흥위원회 통계를 보면 1인당 연간 영화관람 횟수는 3.8회에 이른다. 연간 4회인 미국을 제외하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고 교수는 “한국 영화 점유율이 60%를 넘었는데, 이게 언제까지 갈지 의문이다. 더 올라가기는 힘들 것이다”라고 했다.

‘도가니’ ‘러브픽션’ 등을 제작한 삼거리픽쳐스 엄용훈 대표는 “내년 ‘명량’ ‘협녀’ 등 제작비가 큰 사극이 잇따라 나온다. 비슷한 영화들이 나오면 관객은 떠난다. 할리우드 대작들이 쏟아지는 점도 악재다”라고 했다. 크리스토퍼 놀런의 ‘인터 스텔라’, ‘호빗’ 시리즈 최종편,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 ‘엑스맨’ 등이 내년 개봉 예정이다.

반면 전문가 5명은 이런 호황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봤다. 김택균 투자배급사 쇼박스 홍보팀장은 “2007년의 학습효과가 있다. 무분별한 기획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노종윤 제작사 웰메이드필름 대표는 “내년쯤 일부 조정이 있겠지만 장기적인 흥행기조는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호황 지속을 예상한 응답자들은 인터넷(IP)TV와 케이블TV 등 부가판권 시장의 활성화도 이유로 들었다. 올해 상반기 IPTV와 케이블TV 부가판권 시장 규모는 782억 원으로 지난해 515억 원보다 52%나 증가했다. 김보연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정책센터장은 “과거 비디오, DVD 등이 한국 영화 호황을 이끈 것처럼 현재 부가판권 시장이 커지고 있어 한국 영화에 호재다”라고 말했다.

한국 영화의 호황이 지속되기 위한 제언도 나왔다. 박병우 문화체육관광부 영상산업과장은 “투자 배급 상영에서 공정경쟁의 환경이 중요하다. 우월적 지위를 가진 대기업들이 이전투구를 벌이면 안 된다. 시나리오 작가, 현장 스태프에 우수 인력이 들어오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정민 교수는 “불법 다운로드를 근절해야 부가시장이 지속된다. 급성장하는 중국 등 해외시장을 계속 두드려야 한다. 외국 현지 공동제작과 ‘설국열차’ 같은 글로벌 프로젝트가 계속 나와야 한다”고 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