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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고미석]박은선의 인권

입력 | 2013-11-08 03:00:00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인 여성 캐스터 세메냐(22)는 2009년 8월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 대회 800m 경기에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우승의 기쁨도 잠시, 그의 근육질 체형과 압도적 기량으로 인해 후폭풍이 몰아쳤다. 국제 육상계 일각에서 ‘남자가 아니냐’는 의심을 제기한 것이다. 결국 국제육상경기연맹은 성별 검사를 결정했고 이듬해 조사 결과는 공개하지 않은 채 “여성 종목에 나갈 수 있다”고 발표했다.

▷“우리 아이는 분명 딸인데 아들로 몰아붙인다고? 만일 내 자식에게 그런 짓을 하는 자가 있다면 총으로 쏴버리겠어!” 당시 남아공 체육회장은 국제육상연맹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며 이렇게 외쳤다. 남아공 국민들도 “‘우리의 딸’을 지키기 위해 전쟁도 불사하겠다”며 들끓었다. 백인들이 자기중심적 기준으로 여성성을 정의한 데 따른 인종 차별이자 선수의 존엄성을 훼손한 행태라는 공감대가 확산됐다.

▷최근 여자 축구선수 박은선 씨(27)에 대한 성별 논란이 불거졌다. 그가 소속된 서울시청팀을 제외한 한국여자축구연맹 소속 6개 구단 감독들이 문제를 삼았기 때문. 2010년 중국 대표팀 감독이 박 선수의 성을 의심했는데 이번엔 국내 축구인들이 자국의 스타 선수를 짓밟은 셈이다. 키 180cm에 몸무게 74kg, 탄탄한 몸과 강인한 정신력을 갖춘 그에게 굳이 죄가 있다면 올 시즌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는 점이다. 인터넷에선 감독들의 행태에 대해 ‘인권 침해’라는 비난이 넘친다.

▷이런 논란을 보면서 여성의 능력이 너무 출중하면 ‘비(非)여성적’으로 집단따돌림을 당하기 쉽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월드컵과 올림픽 때 성별검사를 받고 출전했던 박 선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절 모르는 분들도 아니고 웃으면서 인사해주시고 걱정해주셨던 분들이 이렇게 저를 죽이려고 드는 게 더 마음이 아프다”는 글을 남겼다. 하지만 그녀는 멋졌다! ‘단디 지켜봐라 여기서 안 무너진다 더이상 안 넘어진다 지켜봐라’고 다짐했다. 박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서라도 내년엔 축구장을 찾아야겠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