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이 입교 권유”… 장군의 아들 유난히 많은 ‘로열 기수’
1977년 3월 2일 육사 입교식에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자녀인 근혜 근령 씨와 함께 참석했다. 박 대통령은 입교식 후 학교 식당에서 지만 씨(테이블 왼쪽 줄 두 번째) 및 다른 신입 생도들과 담소를 나눴다. 이들이 육사 37기생이다. 동아일보DB
지난달 단행된 중장급 이하 장성 인사에 대해 군 관계자들은 이런 평가를 주저하지 않는다. 기무사령관(이재수 중장)을 비롯해 합참 작전본부장(신원식 중장)과 특수전사령관(전인범 중장), 국방부 국방정보본부장(조보근 중장) 등 핵심 직위에 육사 37기들이 두루 기용됐기 때문이다. 이들은 현 정부에서 대장 진급과 함께 합참의장과 육군참모총장 등 군 수뇌부로 발탁될 가능성이 높다.
육사 37기는 지난해 10월 군 인사에서 중장이 처음 배출됐다. 당시 신원식 국방부 정책기획관과 양종수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장이 중장 진급과 함께 수도방위사령관과 군단장에 각각 임명됐다. 이어 새 정부 출범 직후인 올 4월 인사에서 이재수 장군 등 3명이 추가로 진급된 뒤 지난달 전인범, 엄기학, 조보근 장군까지 나란히 ‘별 셋’을 달면서 중장 진급자는 총 8명으로 늘었다. 통상 육사 한 기수에서 5∼7명의 중장 진급자가 배출되는 점을 감안하면 육사 37기의 중장 진급자는 많은 편이다. 더욱이 한 기수 선배인 육사 36기들이 군내에서 비교적 한직으로 평가되는 보직에 머문 반면 37기들은 주요 보직에 많이 포진해 향후 ‘고속 진급’이 유력한 상황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7년 입교한 육사 37기는 지만 씨를 포함해 총 293명. 이 중 130여 명이 현재 군에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계급별로는 중장부터 대령까지 분포돼 있다. 37기 대령들은 내년에 만기 전역할 예정이다.
37기를 전후한 육사 출신들은 ‘박지만 생도’를 어떻게 추억하고 있을까. 지만 씨가 1학년 때 같은 소대에서 지낸 한 예비역 장성(육사 36기)은 “과묵한 편이었고 많은 친구를 사귀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머리가 비상한 친구였다”고 기억했다. 다른 예비역 장성(육사 37기)은 “대통령 아들의 티를 내지 않고 평범했다. 3, 4학년 중대장 생도 때 리더십을 발휘해 후배들을 잘 챙겼다”고 떠올렸다.
지만 씨에 대한 특혜나 특별대우는 없었을까. 군 관계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오히려 대통령 아들과 동기라는 이유로 곤욕을 치른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한 예비역 장성(육사 35기)의 회고. “당시 상급생도들은 지만 씨가 포함된 37기에 ‘편견’을 갖고, 그냥 넘어갈 잘못도 더 엄하게 기합을 줬다.” 육군 A 준장(육사 37기)은 “지만 씨 등 37기가 선배들에게 ‘미운 털’이 단단히 박혀 고생했다”며 “이 때문에 37기가 다른 기수보다 결속력과 유대감이 강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생도 시절 지만 씨의 ‘단짝 친구’는 서울 중앙고 동창인 이재수 중장(현 기무사령관)이었다. 두 사람은 같은 소대에서 동고동락하며 고교 때부터 맺은 우정을 더 돈독히 다졌다고 군 관계자들은 회고했다. 자신을 ‘대통령 아들’이 아닌 ‘친구 박지만’으로 스스럼없이 대하는 이 중장에게 지만 씨는 인간적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생도 시절부터 두 사람을 잘 아는 한 예비역 장성(육사 36기)의 전언. “지만 씨에게 이 중장은 흉금을 터놓을 수 있는 ‘죽마고우’였다. 학과 시간은 물론이고 휴가나 외박 때도 꼭 붙어 다녔다. 누나(박 대통령도)도 어머니(육영수 여사)를 잃고 방황하던 동생을 보살펴준 이 중장을 각별히 대했다.”
1977년 육사 입교식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이 아들 지만 군, 딸 근혜 양 등과 함께 교정을 걷고 있다. 동아일보DB
여기서 다시 부각되는 것이 지만 씨와 이 중장의 ‘특별한 관계’다. 지만 씨가 부친을 잃고 주위의 냉대 속에 누나(박 대통령)와 함께 청와대를 나올 때도 이 중장은 지만 씨를 위로하고 격려한 유일한 친구였다. 이후 지만 씨가 마약 사건으로 6차례나 구속과 재활 과정을 겪을 때도 이 중장은 ‘절친(절친한 친구)’의 곁을 지켰다. 한 현역 장성(육사 36기)은 “이 중장은 지만 씨가 공주치료감호소를 드나들 때 자주 면회를 갔고 가족이 나서 뒷바라지를 했다”며 “이 중장은 지만 씨가 힘들 때마다 기댈 수 있었던 언덕 같은 존재였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관계가 부풀려졌다는 증언도 있다. 한 예비역 장성(육사 37기)은 “이 중장이 한두 차례 면회를 갔지만 뒷바라지 운운은 과장된 것”이라고 했다. 다만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그 시절 현역 장교가 구설수에 오른 전직 대통령 아들과 가까이 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중장은 최근 국회 정보위원회의 기무사 국정감사에서 “지만 씨는 친한 친구라 예전엔 가족들과 식사도 했고, 한 달 전에도 통화했다”며 친분 관계를 인정했다.
지만 씨도 자신과 육사 37기에 쏟아지는 주위의 관심과 따가운 시선을 잘 알고 있다고 한다. 한 현역 장성(육사 36기)은 “현 정부 출범 직후 지만 씨가 가까운 지인들에게 ‘18년간 대통령 아들로 살았는데 대통령 동생이 뭐가 대수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전했다. 현 정부에서 군 인사 등 어떤 사안에도 개입할 의사가 없음을 강조하며 스스로 선을 그은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주변의 입방아는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 군 인사에서 임명된 지 6개월 만에 전격 교체된 장경욱 전 기무사령관(소장·육사 36기)이 김관진 국방부 장관의 독단적 인사를 청와대에 ‘직보(直報)’했다고 공개하면서 기무사령관 자리는 더욱 주목의 대상이 됐다. 군 고위 관계자는 “현 정부 내내 지만 씨와 육사 37기에 불편한 시선이 쫓아다닐 것”이라며 “‘지만 씨와 가까운 군 인사가 누구냐’는 말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군 인사의 공정성에 더더욱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