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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의 달콤쌉싸름한 철학]눈부신 어둠

입력 | 2013-11-09 03:00:00


자전거를 타다가 사고가 났습니다. 유머 감각 있고 환자 편하게 해주는 의사 말이 무릎 뼈가 장렬하게 전사해 세 조각이 난 덕에 인대를 구했다고 합니다. 철심을 박고 와이어를 감고 깁스를 하고 병원에 누워 있자니 무상하기 그지없습니다. 자전거를 타겠다고 휴대전화도 없이 집을 나왔을 때 누가 집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3주 동안이나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보니 허무하기 짝이 없습니다. 거기서 나는 인간이 허무를 어떻게 만나는지를 똑똑히 봤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기습적으로 다가와 덮치는 거지요. 그 누구도 비켜 가지 않는 곤혹스러운 허무의 힘을 어찌 거스를 수 있겠습니까.

허무는 사랑이 가고, 젊음이 가고, 건강이 가고, 부귀영화가 갈 때 우리가 입어야 하는 남루한 옷입니다. 내가 이렇게 볼품없는 옷을 입어야 하냐고 억울해 하면 그 옷이야말로 위태로운 마음의 감옥이 됩니다. 그러나 거적때기를 걸치고 구도에 나선 싯다르타나, 방랑하는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의 시기라고 생각하면 이상하게도 침착해집니다. 침착해지면 그 허무를 관통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느낍니다. 생을 정리하면서 자기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였다고 고백한 융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영원한 변화 속에서, 살아서 존속하는 무언가에 대한 감각을 결코 잃어버린 적이 없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사라져가는 꽃이다. 그러나 땅속 뿌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꽃이 시들어 떨어져도 뿌리가 남아 있으니 또다시 꽃을 피울 것이라는, 집착의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융은. 그는 인간은 개인이고, 개인은 세계가 제기한 하나의 물음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 물음은 드러나지 않는 뿌리처럼 감춰져 있는 어둠이지만, 그 어둠은 눈부신 어둠, 신비한 어둠입니다. 단테 식으로 얘기하면 거기가 사랑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분노하고 패거리를 만드는 지옥을 빠져나와 자신의 고유한 운명을 알아채는 연옥입니다.

요즘 대학에서는 인문학이 위기라는데, 사회 한쪽에서는 인문학이 열풍입니다. 기업에서는 인문학을 블루오션으로 생각하고 관심을 갖는 것 같습니다. 역사를 알면 정책 모델을 찾을 수 있고, 예술작품을 알면 광고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철학을 하면 명료한 사고를 할 수 있고, 심리학을 알면 관계를 풀어가는 기술이 늘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문학의 궁극은 그런 쓸모 너머에 있습니다. 인문학의 궁극은 자기성찰이고, 그것은 저 눈부신 어둠을 침착하게 들여다보는 촉수를 가진 자의 것이겠지요.

산티아고 길을 걷고 또 걸으며 그 촉수를 회복한 파울루 코엘류는 ‘포르토벨로의 마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내가 침묵하고 있을 때나 고양되어 있을 때, 온 우주와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걸 느껴. 그리고 그 순간 마치 신이 내 걸음을 인도하는 것처럼, 전에는 몰랐던 것을 알게 되지. 그럴 때면 모든 비밀이 내 앞에 드러나는 것만 같아.”

침묵 속으로, 어둠 속으로 들어가 자기 뿌리를 돌보는 시간, 그 시간이 우리를 거듭나게 합니다.

그동안 ‘이주향의 달콤쌉싸름한 철학’을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끝―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후속으로 에세이스트 강세형의 ‘기웃기웃’이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