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정체성 8년간 추적분석… 전문가 38명이 38가지 주제로 쉽게 풀어내◇한국인은 누구인가/김문조 외 공저/564쪽·2만8000원/21세기북스
불과 몇 년 새 스마트폰과 태블릿PC는 한국인 신체의 일부분이 됐다. 전통에 집착하면서도 빠르게 새로운 물질문명을 습득하는 복잡다단한 마음결이 한국인의 정체성이다. 21세기북스 제공
직장 동료에게 건네는 “수고하세요”란 인사도 한국인만 쓴단다. 영어권 국가에서는 같은 상황에서 쉬엄쉬엄하라는 말로 “Take it easy”라고 한다. 한국에서 “놀고 있네”라는 말은 비꼬는 말이다. 놀려면 숨어서 놀아야 한다. 일중독을 권하는 사회란 분석이 설득력이 있다.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연간 노동시간은 가장 긴 반면 노동생산성은 낮은 편에 속한다는 통계는 식상하다. 유 교수는 딱 두 문장으로 일중독의 심각성을 진단한다. “많은 남자들이 발기불능이나 조루로 괴로워하지만 그것 때문에 자살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경제력을 잃은 남성 중 상당수는 사회적으로 고립감을 느끼고 스스로에 대한 회의와 절망으로 우울증에 빠지거나 자살을 시도한다.”
김계현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공무원 직을 선호하는 한국인을 분석하며 “선수는 자녀이지 부모가 아니다. 선수는 코치나 캐디의 조언을 참고는 하되, 항상 그대로 따르지는 말아야 한다. 특히 인생을 거는 직업이라는 종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고 조언한다.
38가지 주제를 모자이크로 이어붙이면 한국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호영 아주대 의대 명예교수는 한국인이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고 진단했다. 한국의 전통적 유교 사회에서는 부끄러움을 인간의 마음과 행동의 근본이라고 봤다. 하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해야 하는 오늘날에는 이런 염치를 아는 자세가 홀대받고 있다고 분석한다. 염치가 없는 것은 애나 어른을 가리지 않는다. 어른들은 자기 이미지를 높이려고 부끄럽고 창피한 행동도 불사하고, 애들은 집에서 귀한 대접을 받고 병적인 자기애를 키우며 자라고 있다.
편집위원장을 맡은 김문조 교수는 ‘다채로운 마음의 지도’ 속에서 3가지 큰 축으로 한국인을 정의한다. △‘끼리끼리’ 관계주의 △‘빨리빨리’ 현세주의 △‘다다익선’ 배상(賠償)주의. 이를 종합하면 ‘친한 사람들끼리 한평생 만복을 원 없이 누리며 살아가는 것’. 그 밑바탕에는 안락한 삶을 향한 지복(至福)의식이 내재돼 있단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