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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해제 MB5년]死者는 말이 없다

입력 | 2013-11-09 03:00:00

野 “病中 김재정이 로비 몸통이겠나”… 與 “소설을 써라”




2007년 7월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휠체어를 타고 검찰에 출두한 MB 처남 김재정 씨. 이명박 후 보 측과 박근혜 후보 측은 당시 각종 의혹 폭로를 놓 고 고소 고발전을 벌였다. 김재정은 이때도 심한 당 뇨와 고혈압을 앓고 있었다. 2010년 2월 김재정이 사망한 뒤 상복을 입고 빈소를 찾은 김윤옥 여사. 두 오빠에 이어 남동생까지 남자 형제들을 모두 잃었다. 동아일보DB

동아일보 기자=“대우조선해양 남상태 사장 연임 로비 의혹도 조사합니까?”

최재경=“그것까지는….”

동아일보 기자=“김윤옥 여사의 남동생인 김재정 씨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최재경=“(긍정도 부정도 않다가 뜬금없이) 김재정 씨가 많이 아프다지? 요즘 일어나지도 못하는 것 같던데. 혼수상태라고….

2009년 7월 동아일보 사회부 법조팀의 최우열 기자는 최재경 서울중앙지검 3차장(현 대구지검장)과 이런 대화를 나눴다. 최재경이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가 대우조선해양 홍순호 전무를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한 직후였다. 납품업체와 상이군경회로부터 6억8000만 원을 받은 혐의였다. 검찰 주변에선 ‘남상태가 사장직 연임 로비를 위해 조성한 비자금일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연임 로비의 대상은 ㈜다스의 감사였던 이명박(MB) 대통령의 처남 김재정이고….

그러나 최재경은 최우열의 질문엔 애써 즉답을 피한 채 김재정의 병세만 언급했다. 언론에 김재정의 위독설이 보도된 건 그로부터 두 달쯤 뒤였다. 따로 병세를 알아봤다는 얘기였다. 지병이 악화돼 1년 가까이 투병생활을 하던 김재정은 이듬해 2월 결국 사망한다.

김재정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과 12월 본선을 뜨겁게 달구었던 ‘도곡동 땅 실소유주’ 논란의 핵심 당사자였다. MB가 현대건설 사장으로 있던 1985년, 맏형인 이상은 씨와 처남인 김재정이 서울 도곡동 땅 4240m²를 15억6000만 원에 샀다가 10년 뒤 263억 원을 받고 포스코건설에 팔았다. 그 땅의 실소유주가 MB 아니냐는 게 논란의 핵심이었다. 땅 매각대금의 일부가 BBK로까지 이어져 ‘도곡동 땅 실소유주’ 논란은 ‘판도라의 상자’로 인식되기도 했다.

어쨌든 김재정이라는 이름은 그렇게 잊혀지는 듯했다.

하지만 2010년 11월 1일 국회 본회의장. 정치 분야 대정부질문이 있던 그날 본회의장 대형 전광판에 ‘남상태 연임 로비 라인’이라는 제목의 화면이 떴다.

민주당 강기정 의원이 이귀남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로비 의혹을 추궁하며 띄운 차트였다. 그런데 질문은 단지 ‘남상태가 대우조선해양 사장 자리를 지키기 위해 김재정에게 로비를 했다’는 수준이 아니었다.

강기정
=“(이명박 대통령의 친구인) 천신일이 8월 일본으로 도피할 때 묵인했지요?”

이귀남=“그 당시는 (천신일이 임천공업 대표로부터 43억 원을 받은) 혐의사실이 구증이 안 돼 있는 상태였습니다.”

강기정=“천신일 수사를 하면서 마치 대통령의 친구를 읍참마속(泣斬馬謖)하는 것처럼 하고 있는데 사실은 더 큰 정권 비리를 감추기 위해 몸통 자르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귀남=“그런 얘기는 처음 듣습니다.”

강기정=“(화면을 가리키며) 2009년 1월 19일 김재정 씨가 (지병으로) 쓰러져 서울대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그때 남상태는 병간호를 하고 있던 김재정 씨 부인의 도움으로 김윤옥 여사의 병문안 일정을 알아내고….”

요컨대 ‘남상태 연임 로비’의 몸통은 김재정이 아니라 김윤옥이라는 주장이었다. 한나라당 의석에서는 야유가 터져 나왔다. “소설을 써라, 소설을!”

대우조선해양은 1999년 대우그룹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당시 대우중공업 조선 부문이 분리돼 만들어진 회사로, 2조9000억 원의 공적자금을 쏟아 부어 회생시킨 기업이었다. 대우조선해양 홈페이지의 연혁 어디에도 공적자금에 관한 이야기는 없지만, 국민의 혈세로 살린 것이다. 산업은행이 최대 주주가 된 배경도 거기에 있었지만, 이후 ‘주인이 없는 회사’의 사장 선임을 둘러싼 로비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2006년 사장에 취임한 남상태는 대구 출신으로, 대우조선에만 30년 넘게 근무한 산증인이었다. 2009년 한 차례 연임에 성공한 뒤부터 산업은행 내에서는 ‘남상태가 엄청난 백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한 살 위인 김재정과는 어린 시절 인연이 있었다. 또 공교롭게도 MB 정부 출범 직후 국가정보원 2차장(2008년 3월∼2009년 2월)을 지낸 김회선 현 새누리당 의원이 매제였다.

대우조선해양을 둘러싼 ‘권력형 비리’의 의혹을 감지한 건 민주당 강기정뿐만이 아니었다.

2011년 7·4 전당대회에서 한나라당 대표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홍준표는 대표에 취임하자마자 우리금융지주와 대우조선해양의 ‘국민 매각’을 주장했다.

“정권 말의 특혜매각 시비와 권력형 게이트를 막기 위해서라도 공적자금을 투입해 살려낸 우리금융지주와 대우조선해양은 국민공모주 방식으로 매각해야 한다. 정권 말에 이런 게 한 번 터지면 끝장이다.”

두 기업의 국민주 매각 아이디어는 ‘대통령학’의 저자인 고려대 함성득 교수에게서 나왔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 이래 역대 대통령의 친인척 비리를 직접 수사하고 관찰해 온 홍준표에게는 ‘국민 혈세로 살린 기업을 국민, 특히 서민에게 되돌려준다’는 정치적 명분 외에도 ‘불길한 느낌’ 같은 게 있었다.

정부는 물론이고 청와대와 한나라당 지도부 내에서도 홍준표의 ‘튀는 행동’으로 치부하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홍준표는 개의치 않았다.

KDB산은금융지주 회장으로 가 있던 강만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홍준표=“내가 알아보니까 대우조선해양이 형님 소관이라면서요? 국민에게 돌려주면 안 됩니까?”

강만수=“(어이가 없다는 어조로) 할 수 있으면 해보시오. 다만 특별법은 하나 만들어줘야 합니다. ‘강만수 형법상 배임죄 적용 배제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하나 만들어주면 됩니다. 그 다음에 홍 대표 마음대로 하시오.”

포스코는 정부가 가지고 있던 것을 국민에게 돌려주면 됐지만, 대우조선해양은 전 세계에 주주들이 있는데 그걸 어떻게 하냐는 게 강만수의 논리였다.

홍준표는 답답했다. 홍준표의 증언. “사실 국민주 매각 방식은 MB하고도 어느 정도 얘기가 됐던 것이다. 나 혼자 그걸 어떻게 결정하느냐? 그리고 (남상태가 3연임을 위해 로비를 하고 다닌다는) 그 얘기도 들었고….”

홍준표에게 ‘면박’을 주긴 했지만 강만수는 강만수대로 걱정하는 바가 없지 않았다. 남상태는 한 달에 한 번 강만수에게 경영 현황을 보고했다. 그런데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지배구조로도 KDB산은이 ‘주인’일 뿐 아니라, 정치권력으로 보더라도 강만수는 ‘킹만수’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MB 정권의 실세였다.

강만수의 기억.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더 하겠다고 하더라고. 세 번 하겠다고. 그래서 내가 일언지하에 안 된다고 했다.”

남상태는 3연임을 꿈꿨다. 스스로를 ‘포스코의 박태준’으로 생각한 것일까? 그는 대우조선해양의 ‘주인’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아니, 이미 주인 행세를 하고 있었다.

강만수는 남상태에게 “대신 명예롭게 물러나게 해줄 테니 엉뚱한 얘기는 하고 다니지 마라”고 다짐을 해뒀다. 그래도 안심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강만수는 MB에게도 직접 보고를 했다.

강만수=“남상태라는 친구가 사장을 더 하겠다고 돌아다니는 모양인데 더는 안 됩니다.”

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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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수=“그 친구 오래 두면 큰일 납니다. 사고 납니다.”

남상태는 결국 2012년 2월 3연임을 포기하고 “회사 내부에서 대표 이사가 선임된다면 언제든지 용퇴할 준비가 돼 있다”며 사임 의사를 밝힌다. 산업은행은 여기에 맞춰 “남 사장에 대한 사퇴 요구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체면을 세워준다.

PS: 남상태는 현재 세양학원(거제대) 이사장을 맡고 있다. 세양학원은 남상태가 사장으로 있을 때 설립한 대우조선해양의 학교법인이다.

김창혁 선임기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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