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친박’ 여의도 입성 당청관계 변화 바람 몰고 올 듯
10·30 재·보궐선거 결과 당선이 확정된 경기 화성갑 새누리당 서청원 후보가 10월 30일 화성시 봉담읍 선거사무실에서 환호하고 있다.
서청원이 돌아왔다.
서청원 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가 10·30 재·보궐선거(재보선)에서 압승해 국회로 금의환향하면서 여의도 정치권이 긴장하고 있다. 7선(選)의 거물급 ‘원조 친박(친박근혜)’이 입성하면 당장 새누리당 내 세력 판도가 재편되고, 당권 경쟁구도 또한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 청와대 인사 대부분이 서 의원과 친분이 두터운 보수진영 원로들이어서 수직적 당청관계의 변화 여부도 주목된다.
서 의원은 자타 공인 ‘친박 중 친박’ 인사. 언론인 출신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을 따르던 상도동 출신이지만, 1998년 4월 한나라당 사무총장 시절 박 대통령의 대구 달성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를 도왔고, 2007년 17대 대통령선거(대선) 경선에선 친박 진영 고문을 맡아 박 대통령을 지원했다. 선거 이후 친박계가 대거 숙청당하자 박 대통령 호위군단을 자처하며 친박연대를 만들어 18대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대통령 국정운영 뒷받침 든든한 우군”
먼저 서 의원의 입성으로 박 대통령의 친정체제가 공고해지리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 대통령과의 오랜 인연으로 집권 초기 청와대를 뒷받침할 수 있고, 오랜 정치 경험에서 나오는 관록으로 여야를 아우를 수 있어 당청관계와 대야(對野) 전선이 다소 부드러워지리란 관측이 많다.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의혹 등으로 여야 대치가 장기화한 최근 상황에서 야당을 설득하고 꼬인 민생입법과 연말 예산안 처리 같은 문제를 원만히 풀 수 있는 리더십을 발휘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7선의 무게감에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과도 막역한 사이라 그동안 청와대로 쏠린 힘이 서 의원을 축으로 한 당으로 일부 옮겨올 공산도 크다. 새누리당 한 친박계 의원의 분석이다.
“박 대통령은 ‘눈빛만 봐도 안다’는 서 의원이 당내 불만세력을 누르고, 국정운영을 뒷받침해줄 우군이 되길 기대할 것이다. 서 의원은 당내 지분을 바탕으로 차기 대선후보들의 킹메이커 구실을 하면서 박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을 막아줄 최고 적임자이기도 하다.”
서 의원도 “대통령 뜻을 잘 알고 경륜과 지혜를 갖춘 사람이 지원군이 되면 안정적으로 국정운영을 할 수 있다는 건 자명한 일”이라며 자신의 임무를 분명히 했다.
따라서 내년 6월 지방선거 직전(5월) 열리는 전당대회(전대)에서 서 의원이 당대표는 물론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선거에서 특정 인사를 지지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당을 접수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 의원은 “이미 당대표를 해본 만큼 당권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하지만, 서 의원 자신도 정몽준 의원과 함께 최다선인 만큼 당대표와 후반기 국회의장에 도전할 수 있는 양수겸장(兩手兼將) 카드를 손에 쥐게 됐다. 특히 내년 전대에서 선출될 지도부는 박근혜 정부 후반기를 뒷받침하고 20대 총선 공천권을 행사하는 만큼, 청와대와의 교감 속에서 서 의원 자신이 직접 뛰어들 수도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박 대통령 처지에선 탈박 후 복박한 김무성 의원과 고초를 겪으면서도 대통령을 지킨 서 의원을 보는 눈이 다르지 않겠나. 국회선진화법으로 민생 법안과 예산안 등에서 야권의 협조가 필수인 만큼, 야권과 원만한 관계인 서 의원의 활약을 기대하는 건 사실이다.”
“꼬인 정국 해법 찾기 나설 것”
총선을 앞둔 2012년 3월 21일 박근혜 새누리당 선대위원장이 서울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선대위) 발대식 및 공천장 수여식 행사에서 서청원 선대위 고문(오른쪽), 김용환 고문 등과 함께 박수치고 있다.
“서 의원의 ‘그늘’에 들려는 의원이 부쩍 늘었다. ‘당대표에 출마하라’고 부추기는 의원도 많고 서·김 의원의 관계 설정이 어떻게 될지 촉각을 세우는 의원도 많다. 내년 원내대표 및 정책위의장 선거에 나서는 의원이나 차기 대권후보 역시 이미 선거 지원을 통해 눈도장을 찍었다. 다들 사심(私心)이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껄끄러운 김 의원과 서 의원의 충성경쟁을 유도하거나, 조기 당권 경쟁을 벌일 경우 서 의원을 지지하는 모양새를 보이면서 김 의원의 힘을 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서 의원이 당대표를 하면 어차피 20대 총선 공천에서 손에 피를 묻혀야 하는 만큼 차라리 국회의장이 돼 ‘리모컨 정치’를 하는 게 낫다고 본다. 명예롭게 정치 은퇴를 할 수 있다. 강창희 의장과 달리 서 의원은 국회의장이 되더라도 당내 지분이 많아 충분히 자기 뜻대로 당을 움직일 수 있다.”
서 의원의 컴백이 단기적으론 당내 역학구도에 영향을 미치지만 오래 가지 못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미 불법 대선자금과 공천헌금 수수로 두 번 실형을 받은 만큼 당대표 등으로 적극 정치일선에 나설 경우 자칫 역풍이 닥칠 수도 있다는 것. 김남수 한백리서치 대표의 설명이다.
“서 의원은 과거 정치를 한 이른바 ‘올드 보이’인 만큼 운신의 폭이 좁고 새로운 권력도 아니다. 박 대통령에게 단기적으로 방어막이 될 수 있겠지만 이 또한 박 대통령에게 힘이 있을 때 얘기다. 자칫 당대표에 나섰다가 구시대 인물 반대 논리에 막히면 힘이 급속히 떨어질 수 있다.”
서 의원의 핵심 측근은 “이제 국회에 입성한 만큼 여야 의원을 두루 만나면서 꼬인 정국의 해법을 찾을 것이다. 당권 도전은 너무 앞서나갔다”며 “당내 분위기와 의원들의 반응을 보면서 그런 상황이 오면 고려해볼 수 있겠지만, 서 의원이 나서서 상황을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 의원의 행보에 따라 여권 권력 지형이 어떻게 바뀔지 관심이 쏠린다.
배수강 기자 b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