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정권 붕괴 후 한반도 제2의 분단 가능성’ 美 보고서 全文 분석
《미국 랜드연구소는 최근 “북한 붕괴 후 한반도가 다시 분단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낸 것으로 일부 언론에 알려졌다. 한반도의 미래와 관련해 매우 주목되는 사안임에도 보도 내용이 너무 짧고 단편적이었다. 이에 이 보고서의 저자와 함께 9월 25일 서울에서 북한 관련 학술회에 참가한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사회정보관리연구센터장이 ‘신동아’를 통해 이 보고서 전문(全文)을 분석하고 그 함의를 소개한다. <편집자> 》
미국 랜드연구소는 최근 ‘북한 붕괴 가능성에 대한 준비(Preparing for the Possibility of a North Korean Collapse)’라는 보고서를 냈다. 이 가운데 논란이 될 만한 내용은 북한 붕괴 후 한국, 미국, 중국이 군사 충돌을 막기 위해 각각 북한 내 관할구역을 설정한다는 시나리오다. 특히 중국이 북·중 국경선에서 북한 영토 내 50km까지 진군해 완충지대(buffer zone)를 세운다는 이야기는 상당한 파장을 야기했다. 과연 북한 붕괴 시 제2의 한반도 분단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을까.
이 보고서의 저자는 브루스 베넷(Bruce Bennett) 박사다. 그에 따르면 보고서의 포인트는 북한이 반드시 붕괴한다고 단정한 것이 아니라 북한 급변사태 즉, 현 정권이 갑작스럽게 무너질 경우에 대비하는 방안을 밝히는 것이었다.
역주행하는 한국 국방 정책
이 보고서에 나오는 북한 급변사태 시나리오의 시발점은 북한의 현 지도자인 김정은이 암살당한다는 가정이다. 이후 북한군 지도부는 여러 파벌로 갈리면서 군벌화해 동시다발적 내전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본다.
이 보고서는 강력한 중앙집권체제인 북한 정권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붕괴해 무정부 상태에 빠질 경우 한국의 안보 상황이 현재보다 훨씬 악화될 수 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붕괴 시 일어날 수 있는 위기상황은 크게 3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둘째는 대량살상무기(WMD)에 의한 위기다. 사실 북한 정권 붕괴 시 가장 시급한 문제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를 확보하는 것이다. 북한 정권이 사라진다고 북한 땅에 존재하는 대량살상무기의 위협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지휘체계가 무너지면서 국가가 대량살상무기 통제능력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해당 부대 지휘관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한국을 공격하거나, 내전 상황일 경우 상대편 군벌에 사용할 수 있게 된다고 보고서는 경고한다. “설사 지휘체계가 살아남더라도 한국군의 개입을 막기 위해 핵무기 및 생화학 무기의 시위성 사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셋째는 한반도 전체의 정치, 사회적 위기다. 북한 정부 붕괴 시 통일에 대한 기대는 한국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것이라는 예측이다. 일단 북한 정권의 기만과 선전술에 오랫동안 길들어온 북한 주민들은 한국이 주도하는 통일에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120만 명쯤 되는 북한 정규군의 무장해제, 제대조치, 사회복귀는 붕괴 이후 북한 사회의 혼란으로 인해 여의치 않을 것으로 예측한다. 특히 20만 명으로 추산되는 북한군 특수부대원들은 한국 사회의 범죄세력과 결탁하거나 무장봉기의 중심 세력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 보고서가 특히 집중적으로 다루는 부분은 ‘한국의 군사력만으로 북한을 안정화하는 것이 가능한가’다. 북한 붕괴 시 미군이 수행하는 역할은 제한적이다. 미군은 주로 한국군의 병참과 정보 수집을 지원하는 형태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또한 북한을 안정화하는 데 필요한 군사력은 ‘화력’이 아니라 ‘병력’이라고 잘라 말한다. 미군이 수행해온 평화유지 작전 및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얻은 교훈을 근거로, 북한 지역을 장악하기 위해선 북한군의 저항이 없을 경우 26만~40만 명, 저항이 있을 경우 60만~80만 명의 한국군 병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서는 예측한다. 붕괴 후 내전이 일어날 것이라고 상정하면 북한 안정화에 필요한 군 병력은 현재 63만여 명 수준인 한국군의 총 병력 규모를 상회한다.
미국 랜드연구소 보고서.
더 큰 문제는 북한 안정화 작업의 주축이 될 한국 육군의 병력 규모가 줄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정부의 ‘국방개혁 기본 계획 2012-2030’에 따르면 현재 50여만 명인 육군 병력은 2022년경 38만여 명까지 줄어든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대로 군 복무기간이 18개월로 단축될 경우 육군 병력 부족 현상은 더욱 심각해져 2026년경 30만 명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고 보고서는 내다본다. 육군 병력이 30만 명 이하일 경우 북한군의 저항이 전혀 없더라도 한국군 단독으로 북한 전체를 장악하기가 불가능해진다.
“북핵 지원 들통날까봐…”
이처럼 다운사이징 일변도의 한국 정부 국방계획에 따르면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군은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할 수도 없고 한반도 통일을 수행할 수도 없게 된다는 이야기다.
병력 부분을 차치하고, 지정학적으로도 한국군 단독으로 북한 전역을 안정화하고 200여 개로 추산되는 대량살상무기 현장(WMD sites)과 1만여 개의 지하시설을 장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북한 핵 시설의 대부분은 평양 이북에 위치해 있다. 휴전선에서 평양까지의 거리는 약 320km인데 북한군 병력의 70%가 평양과 휴전선 사이에 주둔해 있다. 따라서 한국군이 북한군 밀집지역인 휴전선~평양 지역을 넘어 대량살상무기 현장에 도달하려면 상당한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으로 예측된다는 것이다.
만약 한국군이 평양 이북에 도착하기전에 이미 대량살상무기의 행방을 가늠할 수 없게 된다면, 또한 이러한 대량살상무기가 반란세력이나 테러리스트의 수중에 떨어지게 된다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장기간 전쟁을 수행하면서 얻은 뼈아픈 교훈은 ‘전쟁 시 적국 영토 전역으로 병력을 빠르게 전개하지 않으면 테러집단과 반란세력의 활동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육군 병력 부족 문제는 급변사태 시 한국군 주도의 개입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또한 보고서는 북한 급변사태 시 중국은 북중 접경지대를 통한 대규모 탈북을 일차적으로 우려한다고 예상한다. 그리고 북한의 대량살상무기가 자국을 향해 사용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중국은 한국만큼이나 북한에 개입할 동기가 충분하다고 본다. 흥미롭게도 보고서는 한국이 단독으로 북한을 장악하는 데 성공해 과거 중국이 북한의 핵 개발 프로그램을 지원한 흔적을 발견할 경우 엄청난 후폭풍이 따르기 때문에 중국이 개입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북한에 개입함으로써 미군이 중국 국경에까지 도달하는 것을 막는 것도 중국의 또 다른 전략적 목표라고 주장한다.
이 보고서는 중국이 개입하기 전에 한국군이 단독으로 북한을 장악하는 것을 가장 이상적인 상황으로 본다. 하지만 한국군 병력의 한계 때문에 단시간 내 북한 전역을 장악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며, 결국 한국과 미국은 중국의 개입을 반대하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했다.
북·중 국경에서 평양까지는 130km밖에 안 된다는 사실, 그리고 평양 이북 지역은 북한엔 후방에 해당되어 군사력이 집중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중국은 북한 영토를 장악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중국이 개입 결정을 수월하게 내릴 수 있게 하는 요인들이다.
“한국, 단호하게 북진 결정해야”
보고서 저자인 브루스 베넷 박사.
보고서에 따르면 새로운 38선이 북한을 어떻게 양분할지에 대해선 여러 가능성이 대두된다. 북·중 국경선에서 50km 떨어진 곳에서 분할선이 그어질 수도 있고, 평양 부근에서 분할선이 정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군과는 달리 중국군은 3개 사단 규모의 공수부대를 곧바로 북한에 투입해 평양에 누구보다도 빨리 도달할 수 있다고 보고서는 말한다. 이들 부대 외에도 중국이 동원할 수 있는 지상 병력은 상당하다. 선양, 베이징, 지난, 난징 등 4개 군구에서 100만여 명의 병력이 유사시 동원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서는 내다본다. 결론적으로 중국은 지리적 이점과 군사적 우위를 최대한 살려 북한 전역을 신속하게 장악할 수 있으리라는 것.
따라서 한국은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하면 군사적으로 개입할 것인지를 단호하고 신속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권고한다. 만약 중국이 북한에 먼저 개입해 친중 정권을 세우면 제2의 분단으로 연결될 수 있으며, 한국과 중국 중 어느 나라가 먼저 평양에 도달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중국군이 북한 영토에 주둔할 경우 한국은 미국과의 긴밀한 정책 공조를 통해 중국이 친중 정권을 세우거나 자국 영토로 편입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이 보고서는 주장한다. 하지만 중국의 이러한 움직임을 막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기보다는 중국군과 한미 연합군 간의 충돌을 막는 군사적 영역을 나누는 경계선에 합의할 것을 권고했다.
여기까지 랜드연구소 보고서에서 나온 주요 내용을 소개했다. 한국의 시각에서 보면 냉정한 한반도 판세 분석이 아닐 수 없다. 사실 현재의 한국군은 북한이 먼저 전면전을 도발해오면 이를 방어하는 데 특화됐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한국군으론 북한 급변사태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 보고서는 이러한 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한국군의 이러한 군사적 한계가 향후 북한 영토 보존 및 한반도 통일에 상당한 맹점이 될 수 있다. 한국 정부와 군 당국이 이런 점을 충분히 염두에 두고 국방전략을 다시금 검토해야 한다는 중요한 함의를 던진다.
하지만 분명히 해둘 점은, 이 보고서가 북한 정권 붕괴를 하나의 가능성 정도로만 상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 정권 붕괴는 북한 전문가들이 예측하는 북한의 여러 가지 미래 중 하나일 뿐이다. 또한 그 가능성은 외부에서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낮다고 봐야 한다.
‘실패한 국가’의 견고한 지속성
북한 정권은 김일성 사후 20여 년 동안 매우 견고하게 지속됐다. 소련 붕괴로 인한 대외무역 증발, 초유의 경제 붕괴, 대규모 아사사태, 경제정책 실패, 외부 정보 유입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3대 세습을 이뤄냈다. 그 사이 핵 개발 또한 꾸준히 진행한 것은 물론이다. 정상적인 잣대로는 북한은 분명히 실패한 국가(failed state)다. 하지만 정권의 지속성에서만큼은 전문가들의 예상과는 반대로 흘렀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내구성에도 불구하고 북한 정권이 어느 날 갑자기 붕괴할 가능성 또한 여전히 상존한다. 우리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하는 랜드연구소 보고서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이 부족한지를 인지하고 또 어떠한 해결책을 준비해야 할지를 고민해봐야 한다. 이 보고서의 가장 큰 쟁점은 북한 급변사태 시 중국이 취할 행동이다. 평화를 유지하는 현 시점에서도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급변사태 시에는 중국의 역할이 거의 절대적 변수가 될 것이라고 보고서는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중국이 취할 수 있는 전략적 대응에 대해 좀 더 숙고해봐야 한다.
‘2400만 소수민족’ 어떻게 감당?
북한 핵 시설. 북한 급변사태 시 1차적 확보대상이다.
보고서는 중국이 북한 난민의 대규모 유입을 꺼리는 이유로 동북3성에 살고 있는 조선족과의 연계를 언급하고 있다. 소수민족 분규가 전혀 없는 동북 3성에서 북한 난민 유입으로 민족 문제가 발생할 것을 중국이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 주장이 맞다면 중국은 평양 이북 또는 북한 전역을 자국 영토로 편입하려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200만이 약간 넘는 조선족과 북한 난민의 연계조차 우려한다는 중국이 1300만 명(평양 이북)~2400만 명(북한 전역)에 달하는 북한 주민을 자국에 편입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중국이 골치를 앓고 있는 티베트자치구의 경우 티베트 민족의 숫자는 600만 명이다. 한족과 민족갈등을 겪고 있는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위구르 민족은 1000만 명 정도다. 최소 1300만 명에서 최대 2400만 명의 북한인을 북한 영토와 함께 편입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민족 문제는 지금까지 중국이 당면해온 소수민족 문제와는 차원을 달리할 것이 자명하다. 더욱이 북한이라는 완충지대가 사라짐으로써 중국은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과 군사적으로 직접 맞닿게 되는 지정학적 위험에도 노출된다. 과연 중국이 이러한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 영토를 편입할 것인지는 의문시된다.
그렇다면 북한 급변사태에 대처하는 중국의 실제 행동은 어떻게 진행될까. 중국은 북한 정권이 붕괴하기 이전에 북한 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 정치·외교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급변사태로 인한 혼란이 하루이틀이 아니라 상당 기간 지속된다면 중국은 군 투입 등 적극적으로 개입하려 할 것이다.
그런데 중국으로서도 개입 시점을 찾는 게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개입 시점을 찾는 게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지는 시리아 사태를 보면 알 수 있다. 미국은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을 전복하려는 내부 봉기가 시작된 2년 전부터 2013년 현재까지 적절한 개입 시점을 찾고 있었지만 결국 개입하지 못해왔다. 사태 초기에는 아사드 정권이 곧 전복될 것이라고 믿어 개입하지 않았다. 예상과는 반대로 아사드 정권이 무너지지 않고 내전이 심화하자 미국은 군사행동이 너무 위험하다고 보고 개입을 주저하게 됐다. 아사드 정권이 민간인들을 상대로 생화학무기를 사용함으로써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현 시점에도 미국은 군사행동이 몰고올 예측불허의 결과를 우려해 개입하지 않고 있다.
미래의 중국도 북한의 상황이 자체적으로 호전되기를 바라면서 개입 시기를 저울질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 들어갈 정확한 시점을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중국이 개입 타이밍을 놓칠 가능성도 크다. 더욱이 중국의 일방적인 개입은 국제사회의 큰 반발을 불러올 것이 분명하다. 물론 개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자국의 이득이 더 크다면 중국은 비판적 국제여론을 개의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득을 볼 지가 불확실하고 감수해야 할 위험이 크다면 국제사회의 동의 없이 북한에 일방적으로 진군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유엔 업고 北에 민주 정권 수립’
훈련 중인 중국 인민해방군 병사들.
한국 헌법은 북한을 영토로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급변사태에 이를 경우 자동적으로 한국이 개입할 것이라고 믿는 이가 많다. 하지만 한국이 헌법을 근거로 북한에 개입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봐야 한다. 특히 베넷 박사가 상정하는 내전 상황에서 한국이 단독으로 개입하기에는 군사력 측면에서 불리한 점이 적지 않다. 또 북한이 유엔 회원 국가인 이상 한국의 일방적인 개입은 한국엔 통일 과정이지만 국제사회에서는 강제 병합 시도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한국이 두 손 놓고 지켜보고만 있을 수도 없다. 한국은 어떤 방식으로 북한 급변사태에 개입할 수 있을까.
보고서가 지적했듯이 한국군이 북한 지역 전체를 장악하기는 힘들다. 현실적으로 중국도 개입 시기를 저울질하며 주저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한중 양국은 각자가 일방적으로 북한에 들어가는 것 보다는 국제사회의 동의를 얻은 후 개입하는 쪽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꼭 그대로 진행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북한 급변사태 발생 시 주변국의 개입이 국제법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근거는 크게 3가지다.
첫째, 보호 책임이다. 북한 정권의 붕괴로 북한 내에서 대규모 인권침해와 아사사태가 벌어질 경우 국제사회는 인도적 차원에서 다른 나라의 개입을 허용할 수 있다.
둘째, 대량살상무기에 의한 위협이다. 북한이 내전에 빠져들어 북한 정부가 핵무기나 생화학무기의 통제권을 상실했다고 믿을 만한 징후가 있을 때 이런 무기에 의해 피해를 볼 우려가 있는 국가는 자위권 행사 차원에서 북한에 개입할 수 있다.
셋째, 북한 내부로부터의 요구다. 북한 내 상당한 세력이 외부의 개입을 요청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북한 정권이 붕괴한 후 내전이 일어나면 한국, 중국 등 주변국은 이러한 근거에 의해 북한에 개입할 수 있다. 이 중 북한 내부의 요구에 의해 중국이 개입해 북한을 장악했을 때 중국은 친중 정권을 세우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정이 이렇게 되면 통일은 요원해진다. 한국은 이를 막기 위해 중국과의 군사충돌을 무릅쓰고서라도 북한에 개입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중국이 북한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은 국제사회 차원에서 북한 급변사태에 개입하는 것이다. 국제사회가 개입할 수 있는 주된 방법은 분쟁지역에 투입할 평화유지활동(PKO·Peace Keeping Operation)을 유엔 안보리에서 재가하는 것이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이 이 방안에 반대하더라도 최소한 한국은 국제 여론의 지지를 등에 업고 북한 급변사태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갖게 된다. 만약 PKO가 허용되면 한국, 미국, 중국, 러시아, 유럽 등은 평화유지군의 일원으로 북한에 들어갈 수 있다. 다만 일본 자위대의 북한 주둔은 일제강점기의 상처를 안고 있는 한국이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PKO는 무정부 상태의 북한을 안정화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내전을 종식하고 대량살상무기를 통제해야 하며 북한 주민들에게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한다. 이어 북한 주민들이 자유투표를 통해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여기까지 적어도 수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통일은 북한 사회가 안정된 후 남북한 주민들의 자발적 의사에 따라 천천히 진행할 수 있다.
이 방식은 북한의 영토를 보존해주고 한반도에 제2의 38선이 그어지는 것을 막는 현실적 대안일 수 있다. 통일에 대한 성급한 기대를 바로 충족해 주지는 못하지만, 북한에 민주 정권이 들어서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긍정적인 변화다. 이는 북한 경제의 회생, 남북한 자유왕래, 한반도 통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랜드연구소의 보고서는 중요한 시사점들을 통찰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일단 군사 부분의 함의를 보자면, 북한의 전면전 도발을 억제하는 데 맞춰진 한국의 현 군사력으론 북한 급변사태 시 북한 영토 장악과 한반도 통일을 완수하기 어렵다는 점이 드러난다. 그런데도 한국 국방 당국은 감군(減軍) 등 기존 전력마저 약화시키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한국의 경우 한반도의 엄중한 상황에 대한 자각과 대응책 마련이 절실해 보인다. 즉, 중국군의 북한 전개를 완전히 막지는 못하더라도 최대한 억제할 수 있을 만큼의 군사력을 갖추는 문제가 반드시 국방 정책에 담겨야 하는 것이다.
중국군 전개 늦출 군사력 갖춰야
미국 부분의 함의를 보면, 미국은 중국의 개입을 무력으로 억제하기보다는 전략적 가치가 있는 평양을 중국보다 선점하는 쪽을 선호한다는 점이 나타난다. 동시에 미군의 북한 직접 개입에는 신중한 입장이라는 점도 확인된다. 따라서 이 대목에서도 한국군이 북한 개입에 필요한 군사적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중국 부분의 함의를 보면, 한국군이 현실적으로 북한 전역을 장악하기가 어렵다면 중국의 개입을 반사적으로 거부하기보다는 건설적인 방향으로 유도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결국 북한 급변사태 시 한국에는 강한 군사력, 미국과의 긴밀한 공조, 중국에 대한 치밀하고 섬세한 외교, 유엔과 국제사회의 동참을 이끌어낼 역량이 요구되는 것이다.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사회정보관리연구센터장 jsung@asaninst.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