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고물상들의 전쟁
경기 침체가 길어지면서 이른바 ‘금융 고물’로 불리는 부실채권이 대거 쏟아져 나오고 있다. 금융회사나 사모펀드는 물론이고 개인투자자까지 부실채권 투자에 나서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보가 부족한 개인이 뛰어들기에는 위험한 시장”이라고 말한다.
○ 부실채권 시장, 15년 남짓 만에 주목
국내에 부실채권 시장이 형성된 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직후다. 1999년 말 기준 시중은행 부실채권 규모는 61조 원, 전체 대출채권 중 부실채권 비율은 12%에 달했다.
2000년대 들어 잠잠했던 부실채권 시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꿈틀거리더니 올해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다. 올 들어 웅진, STX, 동양 등 대기업이 잇따라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9월 말 현재 25조8000억 원의 부실채권(잔액 기준)이 발생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공장 내 기계를 담보로 대출받은 중소기업 중 돈을 못 갚는 회사가 크게 늘었다”며 “이런 경우 대출금의 절반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 개인들도 ‘고수익’ 노리지만 신중해야
최근 개인투자자들의 부실채권 관심도 높아졌다. 경매정보업체들이 주택 담보 부실채권을 새로운 투자처로 소개하면서다. 개인들도 조금만 공부하면 연 20% 이상의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게 이들의 분석이다.
예를 들어 감정가 2억 원의 아파트를 담보로 A 씨가 은행에서 1억 원을 대출받았다가 3개월 이상 연체하면 부실채권이 된다. 개인은 부실채권 처리회사와 직접 거래하거나 경매정보회사 등을 통해 이 채권을 8500만∼9000만 원에 살 수 있다. 이 아파트가 경매에서 낙찰되면 채권자(개인)는 근저당 설정액(은행 대출금의 130% 안팎)만큼 배당받을 수 있다.
하지만 부실채권 시장은 기본적으로 기관투자가들이 활동하는 ‘그들만의 리그’다. 부실채권 전문펀드나 시중은행 공동출자로 세운 부실채권 전문회사 유암코 등이 수백억∼수천억 원의 펀드를 조성하면, 은행들은 부실채권을 대규모로 처분한다. 유암코 관계자는 “아파트 담보 부실채권은 대출금의 80∼90%, 부동산에 기계가 섞인 담보부채권은 50∼60%에 채권을 매입한다”고 밝혔다. 일부 신용정보회사는 대부업체나 저축은행의 무담보 부실채권을 원금의 5%도 안 되는 값에 사들인 뒤 ‘끈질긴 추심’으로 투자금을 회수해 원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개인의 부실채권 투자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한 부실채권업체 관계자는 “경매 낙찰가가 낮거나 경매 일정이 길어지면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며 “근저당권을 사도 경매집행비용, 소액임차인의 최우선변제금, 체납세금 등은 돈을 받는 순위에서 앞서기 때문에 이를 감안해야 한다”고 밝혔다. 금융계 전체로 봐도 부실채권 가격이 최근 1∼2년 사이 20∼30% 올라 수익률이 연 10% 안팎에서 6%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 부실채권(Non Performing Loan·NPL) ::
3개월 이상 원리금을 갚지 못해 회수가 불확실한 대출 채권. 은행들은 보통 대출금보다 낮은 가격에 채권을 팔거나 회계상 손실로 처리한다. 담보물을 경매에 내놔 원리금 일부를 회수하거나, 구조조정을 통해 대출받은 기업의 체력을 회복시켜 부실채권을 정상으로 되돌리기도 한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