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권. 스포츠동아DB
“결승 2차전 동점 후 30분이나 남아 눈앞 캄캄
수당만 5억원 안팎…축하턱 크게 쏴야 할듯”
최용수 감독님·하대성 선배가 어깨 두드려줘 감사
신경전 심했지만 한국 국적때문에 난감하진 않아
중국 진출 우려의 시선 알아…진짜 꿈은 유럽 진출
“FC서울은 최고의 상대였다.”
축구대표팀 수비수 김영권(23)이 엄지를 들었다. 김영권이 속한 광저우 에버그란데(중국)는 9일(한국시간) 서울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2차전 홈경기에서 1-1로 비겼다. 광저우는 1,2차전 합계 3-3으로 서울과 동률을 이뤘지만 원정 다 득점 원칙에 따라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 서울과 1차전 후 멘붕
광저우 선수들은 지난 달 26일 서울과 1차전(2-2) 후 ‘멘붕’(멘탈 붕괴)에 빠졌다. 광저우는 토너먼트 1차전에서 늘 상대를 압도했기에 서울과 비긴 후 많이 당황했다. 김영권은 “서울과 1차전 후 동료들 눈빛이 달라졌다. 자기들끼리 모여 ‘우리 이러다가 우승 못할 수도 있겠다’는 말을 하더라. 그만큼 서울이 강했다”고 밝혔다. 광저우는 결승 2차전 때 후반 12분 엘케손의 골로 앞서갔지만 4분 만에 서울 데얀이 동점을 만들었다. 김영권은 “실점 후 전광판을 보니 30분 남았더라. 이걸 어떻게 버티나 걱정 했다”고 털어놨다. 경기 후 김영권이 서울 최용수 감독에게 깍듯하게 인사하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유니폼은 서울 주장이자 대표팀 선배 하대성과 교환했다. 그는 “비록 상대였지만 축구 후배로서 예의를 갖추고 싶었다. 최 감독님과 (하)대성이 형이 축하한다고 어깨를 두드려 줘 감사했다”고 말했다.
● 장린펑은 천사표
서울과 광저우의 장외 신경전은 뜨거웠다. 광저우 마르첼로 리피 감독은 1차전을 앞두고 “서울이 훈련장을 제공하지 않았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광저우 팬들은 2차전을 위해 중국을 방문한 서울 숙소, 훈련장을 찾아 레이저 빔을 쏘는 등 극성을 부렸다. 한국 국적으로 서울을 상대한 김영권이 난감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김영권은 “동료들과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우승 후 동료들이 ‘네가 한국 최고 수비수’라고 말해줬다”며 고마워했다. 김영권의 팀 내 절친은 오른쪽 풀백 장린펑. 온 몸에 문신을 한 강한 인상의 선수다. 그러나 김영권은 “겉모습만 그렇지 천사표다. 우승 후 진하게 포옹했다”며 흐뭇해했다.
광저우는 천문학적인 투자로 유명하다. 챔스리그 조별리그부터 4강까지 푼 수당만 200억 원이 넘는다. 광저우는 공헌도를 계산해 감독과 코치, 선수는 물론 통역 등 지원스태프에게도 수당을 지급한다. 김영권은 “결승 수당은 아직 못 받았다. FA컵(현재 광저우가 4강에 올라 있음)까지 끝나면 한꺼번에 줄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번 수당을 묻자 그는 “축하 턱을 많이 쏴야 할 것 같다”며 웃음 지었다. 김영권은 챔스리그 수당으로만 5억원 안팎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승 뒤풀이도 성대했다. 광저우 모기업 헝다 그룹 전속 무용수 공연에 카퍼레이드까지 펼쳤다. 김영권은 “세리머니하고 집에 오니 새벽 3시여서 2시간 밖에 못 잤다. 그래도 우승하니 덜 피곤하다”며 너스레를 부렸다.
● 리피의 선수장악력
이탈리아 출신 리피 감독은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와 월드컵 우승을 경험한 명장이다. 몇 번 오만한 태도로 비판받았지만 지도력은 인정해야 한다. 운동장 안에서는 굉장히 엄격하다. 김영권도 여러 차례 꾸지람을 들었다.
● 더 큰 꿈은 유럽진출
김영권이 작년 여름 광저우로 갈 때 ‘유망주가 왜 중국을 가느냐’는 우려의 시선도 많았다. 김영권은 “나부터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자. 어떻게 성공하는 지 보여주자”고 다짐하며 편견을 이겨냈다. 그는 더 큰 꿈을 품고 있다. 유럽 진출이다. 광저우도 좋은 조건이면 김영권을 보내준다는 입장이다. 김영권은 “유럽 수비수와 경쟁에서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있다. 가능하면 좋은 선수들이 많은 유럽 상위권 팀으로 가고 싶다”고 다부진 각오를 밝혔다.
인천국제공항|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트위터@Bergkamp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