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중부지역을 강타한 슈퍼 태풍 하이옌은 거칠고 잔인했다. 하루 사이에 공항 도로 항구 같은 삶과 문명의 흔적을 거의 깡그리 지워버렸다. 무너진 집들의 잔해와 뿌리 뽑힌 나무들이 뒤죽박죽이 된 도시는 인간이 살 수 없는 아수라장이 됐다. 폐허 속에 시신들이 흩어져 있고 거리에는 가족 잃은 사람들의 울음소리와 절망만이 가득하다.
미국 해군의 관측 자료에 따르면 이번 태풍의 순간 최대풍속은 시속 378km로, 관측 사상 세계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 직격탄을 맞은 레이테 섬의 주도(州都) 타클로반과 사마르 섬에서만 10일 현재 최소 1만2000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통신 마비로 인해 정확한 피해조차 집계하지 못하고 있지만 필리핀 당국은 사망자가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 현지를 둘러본 유엔 관계자 역시 2004년 인도양 지진해일(쓰나미) 참사 이후 가장 큰 인명피해가 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태풍과 함께 강력한 폭풍해일이 덮치면서 피해를 키운 것으로 보인다. 피해 지역의 도로 곳곳이 끊겨나가 구조와 구호활동도 더디게 이뤄지고 있다.
불가항력적 자연재해 앞에서는 국경이 있을 수 없다. 미국과 호주 등 세계 각국이 인도적 차원에서 필리핀을 돕기 위해 팔을 걷고 나섰다.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한국도 적극 동참해야 한다. 1949년 국교를 맺은 한국과 필리핀은 ‘피를 나눈 형제국’이다. 필리핀은 6·25전쟁 때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지상군을 파견했다. 그때 참전한 7420명 중 112명이 이 땅에 고귀한 생명을 바쳤다.
가족과 집을 잃고 망연자실한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은 인류 전체의 당연한 도덕적 책무다. 자연이 몰고 온 불의의 재앙 앞에서 고통 받고 있는 필리핀이 신속한 복구와 재건을 통해 난관을 이겨내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