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 분야 진로
조리분야 명장을 꿈꾸는 대구관광고 3학년 나재욱 군(가운데)은 롯데호텔 총주방장인 이병우 조리명장(오른쪽)과 롯데호텔 책임조리장인 이재상 기능장을 최근 만나 조리 분야 진로에 대한 궁금증을 풀었다. 김재성 인턴기자 kimjs6@donga.com
‘꿈틀꿈틀 신나는 진로’가 다섯 번째로 탐색한 진로는 조리 분야다. 조리 분야는 최근 사람들의 소득수준과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늘어남에 따라 전망이 밝은 진로로 꼽힌다.
이병우 명장은 경희호텔경영전문학교에서 조리를 전공한 뒤 1982년 롯데호텔 양식당 요리사로 입사해 31년째 근무하고 있다. 2006년에는 경희대에서 관광학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등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한 끝에 2010년 조리명장이 됐다.
열정 이어갈 자부심과 절박함이 있습니까?
이 명장은 “조리 분야 진로를 선택하려면 자신이 요리 그 자체에 대한 열정이 있는지를 확인해야한다”고 조언했다. 조리 분야의 특성상 학교에서 수년간 공부한 뒤 현장에 나온다고 바로 멋진 요리를 선보일 수 있는 건 아니다. 청소, 설거지 같은 허드렛일과 음식재료를 준비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런 현실을 모른 채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각종 TV 요리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셰프(chef)를 동경해 조리 분야 진로를 선택한 학생은 현장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수년간 기본적인 보조업무만하고 손님에게 자신만의 요리를 선보이는 자아실현을 하지 못하면 ‘비전이 없다’며 조리 진로를 포기하거나 ‘꿈을 펼치겠다’며 음식점 창업에 뛰어드는 학생이 많다.
자녀가 현장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부모가 다른 진로를 알아보라며 포기시키는 경우도 적잖다. 조리 분야도 과거보다 다양한 일자리가 생겨 진로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 환경의 변화가 ‘지금 하는 일, 현재 직장에서 반드시 승부를 보겠다’는 간절함과 절박함을 사라지게 만들어 쉽게 일을 그만두게 만드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 명장은 “호텔에 입사한 동기 여섯 명 중에 아직 호텔에 남아있는 건 저 한 명”이라면서 “조리 분야의 전망이 밝은 만큼 열정을 갖고 끈기 있게 도전하라”고 당부했다.
이 기능장도 “요리를 통해서 사람들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하고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일한다면 아무리 힘든 과정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해외 유학?… “필요하다면 학교보단 현장으로”
나 군의 질문에 이 명장은 “해외유학을 가야겠다고 결심했다면 비싼 등록금을 내고 유명 조리학교에 진학하기보단 외국의 유명 레스토랑에서 경험을 쌓는 것이 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답했다. 외국의 유명 셰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여러 가지 레시피를 배우면서 짧게는 2, 3년, 길게는 10년 정도 경험을 쌓는다면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 경험을 어떤 요리에도 녹여낼 수 있다는 것.
이 명장은 실제로 자신이 그런 경우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학시절 무작정 프랑스로 떠나 파리의 ‘Euri 레스토랑’에서 일을 시작했다. 해외 레스토랑까지 와서 재료 운반, 오븐 청소, 야채 다듬기 등 허드렛일부터 시작해야 했지만 당시 선배 요리사들 어깨 너머로 요리를 배우면서 경험을 쌓았다.
이 명장은 “이런 경험은 최근 조리업계의 화두인 ‘한식의 세계화’를 이루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식을 세계적인 음식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양식과의 접목이 필요합니다. 외국에서 영업을 하려면 그곳 사람들의 문화나 입맛, 현지의 식자재 등을 고려한 음식을 내놔야 성공할 수 있죠. 음식을 담는 방식, 서빙하는 방법까지도 현지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해외의 요리문화를 직접 경험하면서 이해해야 합니다.”(이 명장)
이 기능장은 “요리는 일식, 중식, 양식, 한식을 가리지 않고 다 경험해보는 것이 좋다”면서 “한쪽 분야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다른 분야에 적용하면 새로운 음식을 만들 수 있으므로 기존 한식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요리 명장 되려면 패션화보 봐라?
조리 분야에서 명장 수준의 전문가로 성장하려면 어떤 능력을 갖춰야 할까. 나 군의 궁금증에 이 명장은 ‘섬세함’을 강조했다. 같은 쇠고기의 안심이라도 부위에 따라 맛이 다르고 소스를 어느 정도 하느냐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므로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 쓸 수 있는 섬세함은 요리사의 필수자질이라는 것. 예술적 감수성을 기르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음식은 눈으로 먼저 먹은 뒤 입으로 먹는 것입니다. 원재료의 맛을 살린 최적의 요리방법은 물론 요리를 아름답게 담아내는 방법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색감을 활용한 방법이 그중 하나입니다. 미술관, 전시회 등을 두루 다니고 인테리어 잡지나 패션화보 등을 보면서 색에 대한 공부를 끊임없이 하며 교양을 쌓으면 도움이 될 겁니다.”(이 명장)
이태윤 기자 wolf@donga.com·김재성 인턴기자
▼ 세계적 요리사? 조리지식+외국어구사능력+도전정신! ▼
명장 5인이 말하는 조리 분야 진로
“모든 직업군은 사라질 수 있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요리는 아닙니다. 사람은 평생을 먹어야 살 수 있으니까요. 질 좋은 음식, 맛있는 음식에 대한 수요도 해가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이병우 명장)
조리 분야의 명장들은 대체로 조리 분야의 전망을 밝게 내다봤다. 기본적인 의식주와 연결되는 산업이므로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것. 특히 세계적으로 한식에 대한 인기가 확산되는 흐름에 힘입어 한식은 고급화의 길을 걷고 있다.
강현우 명장은 “한식 문화를 세계에 전파하려는 노력이 지속된다면 향후 조리사의 직업적 세계는 더 넓어질 것”이라면서 “세계적으로 명성 있는 한식 조리사가 되기 위해선 외국어 구사능력도 키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좋은 먹거리에 관심이 많은 현대인의 요구에 따라 한식뿐만 아니라 조리 분야 전체가 성장할 가능성도 높다. 박병학 명장은 “요리사도 조리와 과학을 접목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며 “단순한 조리가 아니라 맛의 강약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명장들은 “조리 분야의 산업적 전망은 밝지만 교육시스템은 개선할 부분이 많다”고 일침을 놨다.
서정희 명장은 “중식 요리사를 희망하는 청소년들이 비전문가와 기술기능 숙련도가 낮은 강사에게 교육훈련을 받는 경우가 많다”며 “현재 중식 요리사들이 대체로 고령화돼 있어 한국식 중화요리 발전을 이끌 실력 있는 젊은 요리사가 부족한 점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병우 명장은 “조리 관련 교재, 실습시설, 실무경험이 풍부한 교사 등 조리사 양성에 필요한 전반적인 인프라가 부족한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철기 명장은 “한식의 세계화가 국가적 화두이지만 조리 관련 인력에 대한 정부 차원의 관심과 지원은 부족하다”고 말했다.
김재성 인턴기자 kimjs6@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