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현지 시간) 쿠바 아바나 근교 엑스포쿠바에서 열린 ‘2013 아바나 국제박람회’ 한국전시장 내 삼성전자 부스와 쿠바의 국기를 합성한 모습.
4일(현지 시간) 쿠바 아바나 근교의 엑스포쿠바에서 만난 대학생 수사나 마르티네스 씨(22·여)를 비롯한 4명의 여학생은 최근 인기 있는 젊은 한국 남자배우들의 이름을 줄줄이 꿰고 있었다. 이들이 한국 드라마를 처음 접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2009년 방영된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동영상 파일을 본 뒤 한국 드라마와 배우들을 좋아하게 됐다고 했다.
이들은 탤런트 윤상현이 이날 ‘2013 아바나 국제박람회(FIHAV)’ 한국 전시장에서 사인회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 오전 일찍 이곳을 찾았다. 일부는 컬러프린터로 출력한 윤상현의 사진을 들고 와 사인을 받기도 했다. 마르티네스 씨는 “이전에는 ‘코레아(Corea)’라고 하면 당연히 북한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확실히 구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쿠바 여학생들이 4일(현지 시간) ‘아바나 국제박람회’ 한국관에서 탤런트 윤상현에게 사인을 받은 종이를 치켜들고 활짝 웃고 있다. 아바나=박창규 기자 kyu@donga.com
지구 반대편 카리브 해 한가운데 있는 쿠바에 한류(韓流) 바람이 한창 불고 있다. 1959년 혁명 이후 사회주의 정책을 고수해온 데다 아직 미수교국이라는 점에서 최근 쿠바인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이례적이다.
쿠바 한류의 일등공신은 드라마다. 쿠바의 한인들은 현지에 한국 드라마가 들어온 시기를 2, 3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중남미 일부 국가에서 한국 음악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면서 드라마를 찾는 사람도 많아졌다. 이런 관심이 입소문을 타고 쿠바에까지 전해졌다는 것이다. 한류는 CD나 휴대용 저장장치(USB메모리), 외장하드를 통해 전파되고 있다. 쿠바 현지의 인터넷 환경은 과거 모뎀을 쓰던 1990년대 한국과 비슷해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동영상을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신을 한국 드라마 열성 팬이라고 소개한 알바 마르티네스 씨(50·여)는 “브라질이나 멕시코 드라마는 집주인과 가정부의 불륜, 부부 간 배신처럼 내용이 뻔한 반면에 한국 드라마는 젊은이들의 사랑, 고뇌처럼 다양한 내용을 다루고 전개도 빨라 신선하다”고 말했다.
한국 드라마가 알음알음으로 인기를 얻자 쿠바의 한 방송사가 2월부터 오후 9시 프라임 시간대에 한국 드라마를 방영하기 시작했다. ‘내조의 여왕’ ‘아가씨를 부탁해’가 이미 방영됐고 이달부터 ‘시크릿가든’이 전파를 탈 예정이다. 탤런트 윤상현이 쿠바를 찾은 것도 자신이 출연한 드라마가 현지에서 방영돼 인기를 얻은 덕분이다.
드라마의 인기는 한국인과 한국 음식, 문화, 제품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지에 개설된 2곳의 한국어학당에는 더이상 수강생을 받기 어려울 만큼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한국에 대해 공부하는 자발적 스터디 모임도 늘고 있다.
서정혁 KOTRA 아바나무역관장은 “처음 쿠바에 부임하던 2년 전만 해도 현지인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제로’에 가까웠지만 지금은 길에서 마주치면 ‘한국 사람이냐’고 묻고 호감을 표시할 정도로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 한국 제품도 덩달아 인기
쿠바 정부의 한국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KOTRA는 2일(현지 시간) 한국 공공기관 가운데 처음으로 쿠바 정부와 교류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업무 협약을 맺었다. 쿠바는 최근 경제 정책에서 점진적 변화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정체된 경제 활성화를 위해 한국을 비롯한 외국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를 바라고 있다. 특히 현지인들이 삼성전자의 스마트폰을 최고급 제품으로 치고 아바나 거리에서 현대자동차가 자주 눈에 띌 만큼 한국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일레아나 누녜스 쿠바 대외무역부 차관은 “한국의 기술력은 매우 높다”며 “쿠바를 찾는 한국인 투자자들이 더욱 늘어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이 쿠바에서 바로 수익을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쿠바에 진출하려는 한 기업 대표는 “쿠바는 대다수의 기업이 국영 체제인 탓에 현지에 제품을 공급하려면 정부와 계약해야 하고 대금도 바로 받을 수 없어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실제 국내 기업 중 몇몇은 과거에 제품을 수출하고 대금을 받지 못하기도 했다.
미국의 대(對)쿠바 경제봉쇄 조치도 거래에 달러화를 주로 사용하는 국내 기업에는 난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삼성전자 등 현지 진출 기업들은 단기적으로 수익을 내기보다 사회공헌 활동에 집중하며 장기적 안목을 갖고 시장에 연착륙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쿠바에서 한국 제품을 수입해 판매하는 네네카의 김정동 사장은 “쿠바는 중남미 국가들에 우수 인력을 공급하는 허브 역할을 하는 곳”이라며 “제품 하나를 더 팔겠다는 생각보다는 현지 인력과 한국의 기술력을 결합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식의 접근 방법도 생각해볼 만하다”고 제언했다.
아바나=박창규 기자 k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