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화해-공동번영 이념… 10년간 제시해온 베이징포럼… 中중심 질서재편 논의로 변질 제국들 관용보다 교만에 빠지다 몰락의 길 걸어온게 역사의 교훈 중화사상, 中정부이념 부활 땐 많은 견제와 갈등에 직면할 것
염재호 객원논설위원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베이징포럼이 지난 10년간 내세운 일관된 주제는 ‘문명의 화해와 공동번영’이었다. 베이징대가 처음 이 주제를 내놨을 때 한국 측에서는 화해(和諧)를 화해(和解)라고 지레짐작하고 지난 근대사 속에서 발생한 국가 간의 갈등을 화해하자는 것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화해는 조화와 하모니를 뜻한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통해 세계로 진출하면서 중국문명과 서구문명의 조화를 통해 함께 발전해 나가자는 이념을 제시한 것이다.
화해는 중국 국내에서도 유효하다. 55개 소수민족을 가진 중국에 화해는 공동번영의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국내의 갈등을 줄이는 데도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 베이징포럼에서 화해의 개념을 논의하자 후진타오 정부에서도 화해를 중요한 국정이념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하버드대의 두웨이밍 교수가 이끄는 ‘문명의 대화’에서는 유교와 기독교, 이슬람 등 종교적 가치의 조화에 대한 논의를 꾸준히 이어왔다. 올해는 예정에도 없던 김일성대 교수들이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북한도 중국처럼 개혁개방의 가능성이 높다는 이들의 발표는 세계를 향해 북한의 변화를 선전하는 듯했다.
베이징포럼의 역사는 지난 10년간 중국의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10년 전 처음 베이징포럼을 시작했을 때 중국 학자들은 서구의 학자들에게서 뭔가를 배우려는 느낌을 줬다. 다양한 문명의 가치를 인정하고 공동번영을 위한 방안을 찾아보자는 자세가 강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올해의 분위기는 크게 달랐다. 두 개의 슈퍼파워 미국과 중국을 중심축으로 놓고 새로운 질서를 논의하자는 것으로 바뀌었다. 문명의 화해 논의가 어느새 중국 중심의 질서재편의 논의로 변했다. 이제 동남아는 물론이고 중동, 아프리카까지 중국의 영향력은 확대되고 있다.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알리기 위해 2004년 서울에 처음 만든 공자학원은 이제 전 세계 112개국에서 1000개 가깝게 문을 열었다. 중국의 정체성과 문화를 확산하는 정책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에 대한 일본 학자의 지적은 귀담아들을 만했다. 일본도 메이지 유신 이후 세계의 슈퍼파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일본의 가치와 문화를 세계에 전파하려고 했지만 서구 열강의 견제에 막혀 결국 군사대국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역사적 궤적은 심각한 파멸로 이어지기 때문에 중국도 역사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예일대 로스쿨의 에이미 추아 교수도 ‘제국의 미래’에서 제국의 등장과 부의 축적은 그 사회가 갖고 있는 관용 즉 톨레랑스의 덕분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부를 축적할수록 제국들은 톨레랑스보다 자국의 아이덴티티를 앞세우는 국가적 교만에 빠지게 되어 결국은 몰락하게 된다고 설파했다.
중국은 세계질서 속으로 들어오면서 문명의 화해를 제시했다. 그러나 이 화해가 중화사상으로 변질된다면 슈퍼파워 중국은 많은 견제와 갈등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근대화과정에서 잃어버린 100년을 되찾아 다시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회복하겠다는 조급증이 중국사회에 팽배하고 이런 중화사상이 중국 정부의 이념으로 부활된다면 세계 문명사는 또 다른 질곡에 빠지게 될 것이다. 또한 중화사상이 다시 고개를 들 때 우리는 어떤 가치나 전략으로 대응해야 할 것인가, 그런 숙제도 함께 내준 베이징포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