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 재판부, 1심 판결 뒤집어
A 씨(68·여)는 45년 전 친구 소개로 남편 B 씨(81)를 만났다. 공무원으로 일하던 B 씨는 1980년경 퇴직 후 대기업 공장에서 나오는 폐부품을 처리하는 사업을 벌여 수십억 원의 큰돈을 벌었다. A 씨는 육아를 전담하며 삼남매를 낳았다. A 씨가 골프를 취미로 치기 시작하자, B 씨는 골프를 못 치면서도 2001년경 함께 골프 해외여행을 떠나 A 씨가 골프 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앨범으로 만들어주기도 했다. 둘의 결혼 생활은 겉으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부부는 2004년부터 별거하기 시작했고 A 씨는 결국 2011년 B 씨를 상대로 이혼 소송을 냈다.
A 씨는 혼인 기간에 B 씨의 폭언과 폭력에 시달리다 별거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B 씨가 1980년부터 23년 동안 자신과 성관계를 거부하면서 수시로 사창가에 드나들었다는 주장도 펼쳤다. A 씨가 별거한 지 7년 만에 이혼 소송을 낸 이유는 B 씨가 재산을 처분하려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1심 재판부는 혼인 파탄의 원인이 B 씨에게 있다고 판단해 이혼과 함께 B 씨가 A 씨에게 재산분할 4억5000여만 원에 위자료 4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비록 23년간 부부 사이에 성관계를 맺지 않았지만 B 씨가 A 씨를 성적으로 방치할 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B 씨는 예전부터 앓던 성기능 장애를 가져오는 전립샘 비대증이 악화돼 1996년부터 치료를 받았고, 급기야 전립샘암 진단을 받고 2007년 수술까지 받았던 점을 감안했다. 또 폭행 폭언이나 사창가 출입은 진술이 엇갈리고 증거가 부족해 인정하지 않았다. 서울고법 가사3부(부장판사 이승영)는 1심 판결을 깨고 A 씨의 이혼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고 11일 밝혔다.
재판부는 “남편이 고령으로 여생이 얼마 되지 않은 점, 지금도 둘 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는 점, 세 자녀가 훌륭히 성장해 독립한 점을 감안하면 혼인생활이 A 씨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라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A 씨가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하려는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남편에 대한 싫증과 미움, 노여움을 참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2010년 대법원은 부부가 혼인한 뒤 7년 이상 단 한 차례도 성관계를 갖지 않고 불화를 겪다 별거를 하면 이혼 사유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부부 어느 쪽이든 성기능의 장애가 있는데도 전문적인 치료를 받지 않은 채 내버려둔다면 이혼 사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법원 관계자는 “A 씨 부부의 경우 B 씨가 지속적인 병원 치료를 받았고, 질병 말고 다른 이유로 성관계를 회피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단순히 23년간 성관계를 맺지 않았다고 해서 무조건 이혼 사유가 되지는 않는다는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