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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꿈? 미래? 집어치워! 가식은 빼고 날은 세웠다

입력 | 2013-11-12 03:00:00

연극 ‘노란 달’ ★★★★




연극 ‘노란 달’은 10대 소년 리(왼쪽)와 소녀 레일라의 사랑 이야기다. 그 사랑은 풋풋하고 예쁘다기보다 거칠고 어리석다. 그래서 더 사랑스럽다. 국립극단 제공

“×○○. ×발 △ 같은 개○○.”

“미친 병신 개○○.”

걸쭉하다. 국립극단이 ‘청소년 연극’이라는 수식을 붙인 연극 ‘노란 달’ 속 대사다. 욕에 어울리는 폭력과 살인 사건이 잇달아 벌어진다. 14세 이상 관람가지만 10대 자녀와 함께 본다면 마음을 단단히 먹는 편이 좋다. 내용도 형식도, 만만한 ‘청소년용’과는 거리가 멀다.

10대 관객에게 권할 만한 연극이 못된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눈앞에 무한히 펼쳐진 장밋빛 미래의 아름다운 꿈과 희망을 노래하는 무대가 아니라는 것만 납득하면 오케이다. 스코틀랜드 10대 남녀의 이 일탈 이야기는 관객의 마음에 풍성한 생각거리를 남길 단단한 수작이다. 연령에 상관없이.

100분 동안 관객의 눈앞에 나서는 건 목제 간이의자 3개와 배우 4명뿐이다. 영국 북부 소도시 인버키딩에 사는 소년 리(오정택)와 소녀 레일라(공예지)가 우연히 만나 엉겁결에 살인을 저지르고 하이랜드 숲으로 도주한다. 시골마을 편의점, 어두컴컴한 공원, 열차 객실, 첩첩산중 호숫가 오두막을 오가는 배우들을 돕는 건 조명과 음악뿐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배우들은 번갈아 내레이션을 맡는다. 토니 그레이엄 연출은 개막 16일 전 오전 연습을 마친 배우들에게 “무대 위의 ‘공’을 언제나 살아있게 하라”고 주문했다. 동료 배우의 행동과 심리를 묘사하는 내레이션이 잘 훈련한 축구팀 패스워크처럼 쫄깃하게 이어진다. 그 패스워크의 재미가 골이 터지지 않는 이 연극을 끝까지 졸지 않고 지켜보도록 만든다. 이야기 줄기가 명료한 편은 아니지만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애써 집중할 필요가 없다.

내레이션은 상황을 제한하지 않으면서 객석에 넌지시 상상을 제안한다. “레일라는 개 등 위에 올라간 아기고양이 사진을 보고 있습니다. 숙제를 해야 하는데 마음이 어딘가를 둥둥 떠다닙니다. 레일라의 머릿속 생각은 아마 이럴 겁니다. ‘나는 여기 없어….’” 과장 없이 담백한 연기가 관객의 상상을 돕는다.

그레이엄 연출은 “충격적인 장면이 많지만 현실은 훨씬 더 잔인하다. 아이들은 늘 엄청난 폭력에 노출돼 있는데 어른들은 연극에서조차 그런 일이 없는 듯 가르치려 든다”고 했다. 가식 한 톨 없는 이 이야기를 전하며 그는 배우들에게 “무대 위에서 서로를 다독여 주라”고 당부했다. 그 기운이 관객의 마음을 다독인다. 없는 듯 충분히 밝은 달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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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그레이그 작. 박지아 송영근 출연. 24일까지. 1만∼3만 원. 1688-5966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