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먼로 단편집 서점가 불티… 현대문학은 ‘세계문학 단편선’ 펴내짧은 호흡 선호하는 독자층 호응 커… 신진작가 첫 장편도 ‘경장편’ 많아
《 직장인 여성 유재연 씨(33)는 최근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 앨리스 먼로의 소설집 ‘행복한 그림자의 춤’(뿔)을 사서 읽었다. 최근 몇 년 새 그가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작품을 구입한 것은 처음. 그는 “캐나다의 체호프라는 평가에도 끌렸고, 과거 수상자들의 작품과 달리 단편소설집이라 수시로 읽었다 놨다 해도 부담이 적어 좋았다” 고 말했다. 》
400여 쪽 분량의 이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은 총 15편. 가장 긴 작품도 35쪽을 넘지 않는다. 이 책과 먼로의 또 다른 단편집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을 펴낸 출판사 측에 따르면 노벨 문학상 발표 이후 두 책의 국내 판매부수는 5만 권에 육박한다. 출판사 관계자는 “기존 노벨 문학상 수상자와는 소재 등에서 차별성이 있기 때문에 분량이 (짧은 것이) 인기 요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단편집이라 독자 입장에서 장편보다 ‘진입 장벽’이 낮게 느껴지는 효과가 있는 것은 맞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 출판계에는 단편소설의 귀환이라고 부름직한 움직임이 감지된다. 출판사 현대문학은 최근 어니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 토마스 만, 대실 해밋, 데이먼 러니언의 단편소설만 모은 ‘세계문학 단편선’을 펴냈다. 미스터리 소설 작가인 대실 해밋이나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의 원작자인 데이먼 러니언의 단편은 모두 국내에 처음 번역된 작품이다. 김석중 현대문학 편집자는 “단편이란 이유로 제대로 소개되지 못했던 거장의 작품이나, 단편소설 형식으로 장르문학에 족적을 남긴 대표 작가를 소개하는 것이 기획 의도”라며 “‘우주전쟁’의 작가 조지 웰스를 비롯해 기 드 모파상, 오 헨리의 단편집도 곧 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는 소설 독자층의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과거처럼 거장의 어렵고 긴 작품을 끈기 있게 읽는 훈련된 독자층이 많이 줄었다. 그 대신 영화나 인터넷처럼 즉각적 보상을 주는 매체에 독자들이 길들여져 두꺼운 책을 기피하는 독서 행태의 변화라는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국내 작가 중에서도 올해 단편소설집 ‘김 박사는 누구인가?’(문학과지성사)로 김승옥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이기호의 약진이 눈에 띈다. 수상 사유로 “등단 이후 단편 미학의 측면에서 작가가 이룬 개성적인 성취”가 언급된 그는 최근 동인문학상 최종심(4인 후보)과 한국일보문학상 본심에도 올라 화제를 모았다.
이기호 ‘김 박사는 누구인가?’와 윤고은 ‘밤의 여행자들’.
‘장편’이라는 타이틀은 달았지만 분량만 놓고 보면 원고지 500장 남짓의 경장편 소설이 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출간 3개월 만에 7만5000부를 찍은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문학동네)은 200자 원고지 400장 분량이다. 젊은 작가들의 첫 장편도 경장편이 많다. 윤고은의 신작 ‘밤의 여행자들’처럼 민음사가 올여름부터 펴내는 국내 젊은 작가들의 경장편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국내 문단에는 두 가지 흐름이 존재했다. 하나는 “문학성 위주의 단편은 문예지에 실어 문학상을 받고, 대중성 높은 장편으로는 수입을 올린다”며 단편이 제대로 평가를 못 받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흐름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호흡이 짧은 단편만 선호해 깊은 호흡의 장편을 쓰지 못하고 있다”며 완성도 높은 장편의 부재를 아쉬워하는 흐름이다. 최근 단편소설의 귀환은 이런 대조적 흐름을 통합할 수 있는 완충적 공간을 마련해주고 있다.
문학평론가 이광호 씨는 “과거 출판사나 시장에서는 장편이 경쟁력이 높다는 ‘장편 대망론’에 빠져 장편에 과도한 기대를 가지면서 짜임이나 무게감이 미달인 작품을 내놓는 경우도 적지 않았는데 요즘 그런 거품이 빠지는 느낌이다”고 말했다. 문학평론가 손정수 씨는 “한국의 장편이 그간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점에서 장편을 발전시킬 필요는 있지만 먼저 단편으로 탄탄한 내공을 갖춘 뒤 장편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에서 단편의 재발견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