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미(1957∼)
천 년 전 겨울에도 오늘처럼 문 열고 있었다
문 밖 짧은 해거름에 주저앉아 햇빛
제대로 이겨내지 못하는 북향,
쓸쓸한 그 바람소리 듣고 있었다
어떤 누구와도 정면으로 마주보고 싶지 않을 때
문득 고개 들어 바라보는 창
나뭇잎 다 떨어진 그 소리 듣고 있었다
내 핏속 추운 것들에게로 다가와
똑 똑 똑
생의 뒷면으로 가는 문
두드리는 소리 듣고 있었다
물결치는 겨울 긴 나이테에 휘감긴 울창한
숲 향기와 지저귀는 새소리와
무두무미한 생의 입김들이
다시 돌아올 봄 문턱에다 등불 환히
켜는 소리 듣고 있었다
마치 먼 길 혼자 달려온 천 년 전 겨울
천천히 가슴으로 녹이는 것처럼
내 몸 안의 겨울 이야기들이
소리 없이 내리는 함박눈에 실려
누군가의 기억 속으로 기억 속으로
스며드는 소리 듣고 있었다
천 년 전 겨울에도 오늘처럼
시 전편에 뼈저린 쓸쓸함이 서려 있다. 이러고 싶지 않은데 이런 순간을 맞닥뜨리게 될 때가 있다. ‘내 핏속의 추운 것들’, 슬프고 불행하고 추운 기억들이 밀려들어 생의 의욕을 잃고 기분이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때의 마음 풍경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필자는 정작 한겨울보다 가을의 끝에서 겨울로 막 들어서려 할 때 이렇더라. 일조량이 팍 떨어지면 몸과 마음이 움츠러들어 우울증이 생기기 쉽단다. 햇빛이 보약! 햇살 한 오라기, 한 오라기가 금싸라기처럼 기껍다.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