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방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
“최근 푸틴이 진정한 정치가처럼 보였다.”(미국 정치평론가 팻 뷰캐넌)
박근혜 대통령 취임 후 처음으로 방한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최근 서방 언론으로부터 얻은 찬사다. 10월 말 미 포브스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놔두고 그를 ‘올해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뽑았다. 올 9월 미국과 시리아의 화학무기 폐기 합의안 도출을 주도했다는 것이 이유다. 특히 푸틴은 9월 11일 뉴욕타임스(NYT)에 오바마의 시리아 군사개입을 반대한다는 기고를 실어 화제를 모았다. 정적을 탄압하고 자신의 알몸을 과시해 ‘독재자’ ‘기인’으로 불렸던 그가 외교와 민주주의를 중시하는 듯한 세련된 이미지의 지도자로 변신했다.
푸틴은 정치에서 새 길을 찾았다. 그는 은사 아나톨리 솝차크 레닌그라드대 교수가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에 뽑히자 시장 보좌관이 됐다. 하지만 1996년 솝차크는 재선에 실패했다. 새 시장은 푸틴을 높이 평가해 그를 중용하려 했다. 하지만 푸틴은 수도 모스크바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그는 당시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의 참모로 일하던 한 고향 선배의 추천으로 대통령 행정실 직원이 됐다. 모스크바에 입성한 푸틴은 비밀 요원 시절 익혔던 강한 추진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출세 가도를 달렸다. 그는 대통령 행정실 부실장, 연방보안국장, 국가안보위원회 서기 등 안보 부처의 요직을 독점했다.
옐친 대통령도 푸틴을 남달리 아꼈다. 그는 1999년 8월 47세의 푸틴을 총리로 임명했다. 소련 해체를 주도한 옐친은 1996년 재선에 성공했지만 경제난으로 지지율이 바닥이었다. 1998년 러시아는 아시아 외환위기 여파로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하는 등 국가의 근간이 흔들렸다. 낯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동시에 맞이해 사회 혼란도 극심했다. 과한 음주와 고질적 심장 질환으로 신음하던 68세의 옐친은 푸틴에게 권력을 넘긴 덕에 부패 혐의로 인한 기소를 간신히 면했다.
푸틴은 3선 금지 헌법 때문에 2008년 3월 대선에는 출마하지 못했다. 그는 총리로 한발 물러났고 대학 후배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이때부터 반(反)푸틴 여론도 본격 형성됐다. 푸틴은 여전히 권력을 독점하며 사실상 대통령으로 지냈다. 러시아 국민은 그의 장기 집권, 고질적 부정부패, 금융위기 이후 더딘 경제회복, 반정부 인사들의 잇따른 의문사에 염증을 느꼈다.
푸틴은 2008년 법 개정을 통해 대통령 임기를 4년에서 6년으로 늘리며 복귀를 준비했다. 2012년 3월에는 3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경제난과 냉담한 여론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올해 2분기(4∼6월)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1.2%로 2009년 4분기 이후 최저다. 특히 수도 모스크바의 반푸틴 정서가 상당하다. 푸틴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9월 모스크바 시장 선거에서 세르게이 소비아닌 현 시장은 반푸틴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 후보에게 간신히 승리했다.
푸틴도 언젠가 크렘린궁을 나와야 한다. 13년 전 옐친은 무명의 자신을 총리로 발탁해 무사히 퇴진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자신의 안위를 보장해줄 후계자가 없다. 전문가들은 푸틴이 외교에 ‘올인’하며 반미 노선을 고수하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는다. 원유 의존도가 높은 러시아의 허약한 경제 구조, 장기집권에 대한 국민 반감 때문에 국제 사회에서라도 ‘강한 러시아’의 이미지를 구현해야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모스크바 국제경제 및 국제관계연구소의 게오르기 미르스키 연구원은 “국제무대에서 푸틴의 호전적이고 과장된 언동은 국내 정치용”이라며 “각종 선거에서 야권에 밀리고 있기에 서방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한다”고 분석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