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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의 힐링투어]‘니시테쓰 산큐패스’로 떠나는 규슈여행

입력 | 2013-11-14 03:00:00

온천 화산 시장 해안… 규슈의 속살을 버스로 느릿느릿




우리 동해를 낀 덕분일까. 규슈 서해안은 우리 동해안을 꼭 닮았다. 거친 파도며 파란 하늘, 장쾌한 직선의 해안선까지. 이곳은 아쿠네(가고시마 현). 두 바위 틈에 목걸이까지 걸친 닌교이와(인형바위)가 보인다. 가고시마현(일본)=조성하 여행전문 기자 summer@donga.com

여행은 점(點)이 아니라 선(線)이다. 떠나서 돌아올 때까지 그 과정 전체가 여행이기 때문이다. 그런 선의 여행을 즐기기엔 대중교통이 제격. 거기서도 으뜸은 버스다. 지역과 지역을 잇는 기차를 직선이라 한다면 문과 문을 이어주는 버스는 곡선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좀더 속속들이 발을 디딜 수 있다. 여행도 요즘은 ‘느림’이 화두다. 빨라서 좋은 것보단 느려서 놓치지 않은 걸 더 귀하게 친다. 그간 스쳐 지나친 많은 것이 버스란 느린 발에 걸려 추억의 창고에 차곡차곡 쌓일 터이다.

니시테쓰(西鐵·규슈의 버스철도회사)의 산큐패스(SUNQ Pass)로 떠난 규슈여행 길이 그걸 증명했다. 산큐패스는 일정 기간(3·5일) 규슈 전역의 철도(일부)와 버스(거의 전부·2400개 노선), 페리(세 항로)를 무제한 이용하는 승차권. 젊은 세대엔 규슈여행 필수품이 된 지 오래지만 장년층엔 생소하다. 그런데 써 보니 그저 단순히 저렴한 교통카드가 아니었다. 철도나 렌터카와 달리 여행을 진지하고 풍성하게 해준 효자손이었다. 다가오는 겨울, 백팩 하나 둘러멘 채 규슈를 버스로 자유로운 영혼처럼 훠이훠이 방랑해 보는 건 어떠하실지.

낮 12시 50분 후쿠오카 도심 덴진버스센터. 니시테쓰의 벳푸행 고속버스가 출발했다. 벳푸는 100년 전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내(캘리포니아 주)에서 거리를 행진하며 할리우드 스타 등 100여 명을 호화 범선에 태워 데려왔던 일본 최대 규모의 온천타운. 그곳을 버스로 찾긴 그게 처음이었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 온천타운 유후인을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오른 고갯마루에서 벳푸 만 바다와 시내가 눈에 들어왔다. 벳푸다.

아쿠네 해안마을의 타로스시 주인 우에노 신타로씨가 이곳의 명물인 부채새우 세트를 보여주고 있다.

나는 벳푸 역 앞에서 묘반온천행 시내버스에 올랐다. 함유된 다량의 유노하나(湯の花·온천부유물)로 인해 온천수가 잿빛을 띠어 ‘곤야지고쿠’라 불리는 이곳. 찾은 온천탕은 50년 역사의 ‘호욜란드(Hoyoland)’. 다섯 빛깔의 염색탕이 있는데 그중 정원 한가운데의 로텐부로(노천욕장)는 남녀 혼탕이었다. 혼욕탕이라 해도 탁한 잿빛 온천수가 몸을 가려 남녀가 민망할 일은 별로 없다. 이타이이타이병―1960년대 남규슈 서해안 미나마타에서 발생한 카드뮴중독 공해병―치료에 효험을 보았다던 탕치(湯治) 온천이다.

저녁식사는 벳푸에서 15km 남쪽(30분 거리)에 있는 오이타 시내의 한 이자카야(居酒屋·식사와 음주를 겸한 반주식당). 규슈 명물 혼카쿠쇼추(本格燒酎·위스키와 똑같은 증류 방식으로 내린 소주)를 맛보기에 그만이다. 그런데 일정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밤 11시 야간버스로 규슈 남단 가고시마 시(가고시마 현)로의 이동이 남았다. 버스는 시내 가나이케 터미널을 출발, 7시간 20분의 밤샘 주행에 돌입했다.

버스 좌석은 잠을 잘 수 있게 고안됐다. 한 열에 좌석 세 개가 서로 떨어져 있고 화장실도 갖췄다. 가고시마 도착은 다음 날 오전 6시 20분. 이 버스에 오른 건 숙박비(10만 원)와 이동시간(4시간 반)을 절약할 수 있어서인데 선잠과 새우잠만 각오하면 효과는 만점. 단, 젊은 층에게만 권한다. 역시 산큐패스로 이용한다. 간밤의 피로는 시내 온천목욕탕에서 푼다.

둘째 날 일정은 렌터카(산큐패스 소지하면 20% 할인)로 사쿠라지마와 일본 본토 최남단 사타미사키(佐多岬) 찾기. 사쿠라지마는 분화 중인 활화산 섬(연륙도). 가고시마 시내에서도 바다 건너로 뻔히 보이지만 폭발 장면을 보기 위해 페리에 차를 싣고 섬을 찾았다. 분화구전망대는 한 기념품가게 뒷마당인데 굉음을 동반한 폭발이 수시로 펼쳐졌다. 이어진 드라이브투어. 사타미사키까진 110km(2시간 반 소요)다. 그런데 세상 땅끝은 다 비슷하다. 고적한 풍광이 그렇다. 쉼 없이 대양으로부터 불어 닥치는 강풍 탓이다. 해안에 절벽을 이룬 사타미사키는 바로 앞 등대섬과 어울려 독특한 풍광을 선사한다.

최근 가고시마 시내에 문을 연 포장마차촌 야타이무라의 골목 안. 다양한 안주를 놓고 술을 마실 수 있는 야타이(포장마차)가 골목 안에 즐비하다.

가고시마 현은 ‘혼카쿠쇼추’의 종가다. 유럽연합(EU)이 ‘지리적 표시보호’제도―샴페인 코냑 등―를 시행하자 즉시 따랐다. 가고시마 현의 양조장에서 가고시마 특산 고구마로 증류한 쇼추만을 ‘가고시마 혼가쿠쇼추’로 등록(2005년)시켰다. 그러니 가고시마에선 이걸 마셔야 제격. 최근 가고시마 시내에 문을 연 야타이무라(포장마차촌)를 찾았다. 좁은 골목에 다양한 안주와 여러 가지 스타일의 선술집 10여 곳이 성업 중이었다. 이날 숙소는 가고시마주오(中央) 역 부근 니시테쓰 솔라리아 가고시마 호텔.

여행 사흗날. 가고시마주오 역에서 사쓰마센다이행 고속버스(07:45)에 올랐다. 그리고 시내버스로 바꿔 타고(08:30) 국도 3호선을 따라 서해안을 북상, 아쿠네(阿久根·사쓰마센다이 시)를 지나 구라노모토 항에서 페리(15:20)로 바다 건너 우시부키 시로 갔다. 여기서부턴 구마모토 현. 이날 일정 중 백미는 아쿠네(阿久根)였다.

①일본 본토 최남단인 사타미사키 ②아마쿠사 펄 라인 경관도로의 바다풍광 ③벳푸 호욜란드의 혼욕탕 ④사쿠라지마의 분화장면.

아쿠네는 충남 태안의 꽃지해변을 연상시킨다. 물이 들면 섬이 되는 거대한 바위 세 개 덕분이다. 역 앞엔 관광안내소가 있고 거기선 침대열차 숙소를 운영한다. 최근 퇴역한 열차를 가져와 침대칸에서 재우는 건데 1500엔(오토바이 여행자)과 2000엔(일반)만 받는다. 역전 상가의 향토식당 ‘다로스시’는 푸짐하고 기막힌 스시정식을 1890엔(약 2만700원)에 내놓아 놀라게 했다. 서울이라면 서너 배 이상 받아도 될 정도다. 우에노 신타로 씨(요리사)가 대물려 40년째 직접 운영하는 향토식당이다.

우시부키 항에서 아마쿠사의 중심 혼도 시까지는 시내버스(16:09)로 1시간 40분 거리. 아마쿠사는 바다 풍광이 아름답기로 이름난 곳. 그래서 숙소도 풍치 좋은 해안의 온천리조트 알레그리아로 잡았다. 이곳 대형 온천탕은 호텔 옆에 따로 있는데 바다가 살짝 조망되는 숲 속에 위치한 호젓한 로텐부로가 인상적이다. 이른 아침 노천탕에서 아침햇살을 맞는다.

여행 나흘째 아침. 호텔 앞에서 오른 구마모토행 고속버스는 ‘아마쿠사 펄 라인(Pearl Line)’이란 멋진 풍광도로를 질주한다. 나는 구마모토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후쿠오카로 갈 계획이었다. 출발한 지 30여 분 후. 점점이 섬으로 수놓인 바다 풍광이 차창을 메웠다. 그 바다 건너로는 시마바라 반도와 운젠 화산(나가사키 현). 다섯 개의 다리가 섬 두 개를 징검다리 삼아 아마쿠사와 규슈 본성(구마모토현)을 잇는데 이 길(국도 266호선)이 ‘아마쿠사 펄 라인’ 경관도로다.

▼ 한국관광객 성장하다 주춤… 장기패스 필요성 타진 중 ▼
노조무 사사키 ‘니시테쓰’ 본부장


니시테쓰의 노조무 사사키 자동차사업본부장(사진)은 자리에 앉자 거꾸로 기자에게 질문공세를 폈다. 우리가 한국인 여행자를 위해 뭘 하면 좋을지가 첫 질문이었다. 한국시장에 대한 니시테쓰의 깊은 관심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한국시장이 한창 신장하다가 주춤한 상태”라며 “장기패스의 필요성 혹은 가능성을 타진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국의 정보기술(IT) 기반 버스환승시스템과 카드(티머니) 요금지불방식, 승용차 요일제를 아주 흥미롭게 보았다”면서 “반면 한국의 운수업체에선 일본버스운전사의 정숙한 운전태도를 배우러 온다”고 말했다.

후쿠오카에 본사를 둔 니시테쓰는 이곳 시내버스와 인근 도시를 연결하는 사설철도 등 운수업을 기반으로 국제물류와 부동산, 유통업까지 망라하는 규슈 굴지의 기업. 산큐패스는 규슈 내 51개 버스회사가 연합해 고안한 버스카드로 그 운영은 니시테쓰가 주도하고 있다.

규슈 전역 버스-배-철도 이용… ‘산큐패스’ 국내여행사 판매

벳푸 시내버스. 전면 왼쪽에 산큐패스 스티커가 붙어 있다.

산큐패스는 규슈 전역에서 버스(51개 회사 2400개 노선)와 배(세 항로), 철도(일부)를 제한 없이 이용하는 버스카드. 전 규슈(4, 3일권), 북부 규슈(3일권·후쿠오카 사가 나가사키 오이타 구마모토 등 5개 현)의 3종이 있는데 가격은 1만4000, 1만, 6000엔. 국내여행사에서 판매 중.

◇특징 △이용법: 산큐패스 스티커가 붙은 버스는 모두 탑승. 탈 때 정리권을 뽑고 내릴 때는 정리권을 함에 넣고 패스를 보여주면 된다. 고속버스(일부 노선)는 전화로 좌석을 예약한다. 이때 통역서비스도 제공. △홈페이지: www.sunqpass.jp(한글사이트). 좀 더 상세한 이용법 및 후기는 다음 블로그 ‘다카미야 하루카의 니시테쓰 홍보실’(http://blog.daum.net/nnr_haruka)에 있다.

◇JR규슈패스와 다른 점 △예약: JR규슈는 구매한 교환권을 규슈 현지에서 철도패스로 바꾼 후에야 예약(지정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산큐패스는 구매 즉시 한국서 가능하다. △가격: 3일 권의 경우 JR규슈(7000엔)에 비해 산큐패스 북부 규슈(5개 현)는 1000엔이 저렴하다. △이용 범위: JR규슈는 규슈에서만 통용. 반면 산큐패스는 인근 혼슈의 시모노세키(야마구치 현)에서도 통한다. △좋은 점: 기차(JR철도 패스)는 지역 간 이동에 그치지만 버스(산큐패스)는 ‘문에서 문으로’ 데려다주므로 보다 효과적, 경제적이다. △적용범위: JR규슈패스는 철도만 국한. 산큐패스는 버스와 철도, 배까지 포함.

조성하 여행전문 기자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