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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주기자의 여의도 X파일]벼랑끝 증권사들 ‘투자자문 수수료’카드 꺼낼까

입력 | 2013-11-14 03:00:00


이원주 기자

“업계 최저 수수료 0.015%.”

라디오나 TV에서 흔히 들리는 증권사 광고 내용입니다. 100만 원어치 주식을 거래하면 증권사에 내는 수수료가 150원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업체 간 고객확보 경쟁이 치열해도 수수료율을 이보다 더 낮추는 증권사는 없습니다. 가끔씩 이벤트로 일정 기간 수수료를 받지 않는 행사를 벌이는 정도입니다.

수수료율이 더 낮아질 수 없는 이유는 0.015%가 한국거래소에 내야 하는 수수료이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하면 주식거래에서 0.015% 수수료를 받는 증권사는 투자자에게 시스템을 제공하고도 고객으로부터 받는 수수료는 하나도 없는 셈입니다. “남는 것이 없더라도 고객을 끌어들이자”는 벼랑 끝 전략이 일반화된 것을 보면 증권사 간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알 수 있습니다.

컴퓨터를 이용한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이나 스마트폰을 이용한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이 널리 보급되기 전까지만 해도 수수료율은 0.5% 안팎이었습니다. 거래 수수료로 얻는 수익이 최근 10여 년 사이에 97%나 줄어든 셈입니다. 증권사 곳간은 바싹 말랐습니다. 최근 금융감독원 발표에 따르면 2분기(7∼9월)에 전체 62개 증권사 중 40%가 넘는 26곳이 적자를 냈습니다.

새로운 수익 모델에 고심하고 있는 증권사들은 최근 ‘투자자 자문 수수료’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습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노후자금 마련을 위한 자산관리 수요가 많아지는 점을 감안하면 거래 수수료를 대체할 수입원”이라며 “프라이빗뱅킹(PB)이나 최우량고객(VVIP) 자산관리 사업 쪽에만 적용해도 적지 않은 수익이 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천대중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지난해 말 기준 국내 거액자산가의 자산 규모는 424조 원 수준으로 이들에게서 자문수수료를 받을 경우 매년 2300억 원의 수익이 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자문수수료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꺼내는 증권사는 없습니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라는 것이죠. 섣불리 자문수수료 얘기를 꺼냈다가는 고객이 오히려 등을 돌릴 게 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자문수수료를 받았다가 투자 손실이 나기라도 하면 고객 항의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며 “우리나라 금융투자시장 분위기로는 시기상조”라고 속내를 털어놓았습니다. 새로운 수익원인 자문수수료를 받을 수도, 이미 떨어진 수수료를 다시 올릴 수도 없는 증권사 직원들에게는 최근 때 이른 추위가 더 혹독하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 이번 주부터 ‘이원주기자의 여의도 X파일’과 ‘한우신기자의 골드키위’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여의도 X파일’은 증권사 등 금융투자업계의 뒷이야기를, ‘골드키위’는 딱딱하고 어려운 금융 정보를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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