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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베이커 NYT 백악관 기자가 쓴 ‘불의 날들’ 속 부시의 대북정책 뒷이야기들

입력 | 2013-11-14 03:00:00

부시, 취임 첫 통화서 DJ가 햇볕정책 설명하자 보좌관에게 “뭐 이렇게 순진한 사람이 있어”
北 핵실험 1시간 전에야 통보받자 후진타오에게 전화 걸어 “김정일이 당신을 완전히 무시”




“쟤네들 이 정도밖에 못 만들어?”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이 실패했다는 보고를 받은 후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핵실험을 예고하며 국제사회를 긴장시켰던 북한의 기술력이 예상보다 너무 뒤떨어지자 부시 대통령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 “북한 핵기술에 실망했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11일 미국에서 발간된 책 ‘불의 날들(Days of Fire): 백악관의 부시와 체니’가 밝혔다.

20년 넘게 백악관 취재를 했던 피터 베이커 뉴욕타임스 기자가 쓴 이 책에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얽힌 뒷얘기가 다수 등장한다. ‘악의 축’ 발언, 6자회담, 핵미사일 실험 등 북한 관련 사건이 많았던 부시 행정부의 대북 기조 변화를 엿볼 수 있다.

이 책에 따르면 당시 부시 대통령은 핵실험 1시간 전 중국으로부터 실시 예정 통보를 받았다. 부시 대통령은 곧바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은 중국에 창피한 날이다. 김정일이 완전 당신을 무시한 것”이라며 쓴소리를 던졌다. 그러면서 “북한에 더 따끔하게 (도발을 못하도록) 얘기해 달라”고 주문하며 전화를 끊었다.

책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부시의 냉랭한 관계에 대한 일화도 담겨 있다. 2001년 부시 대통령은 취임 후 첫 통화에서 김 대통령이 5분 동안 대북 햇볕정책을 장황하게 설명하자 “뭐 이렇게 순진한 사람이 있어” 하며 보좌관에게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김 대통령에 대한 보고서를 즉시 만들어 올리도록 지시했다. 김 대통령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부정적 인상은 이날 5분간의 통화에서 완전히 굳어져 이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2002년 부시 대통령이 연두교서에서 밝힌 ‘악의 축’에는 당초 이라크만 포함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미국인들이 이라크를 침공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일까봐 북한과 이란을 덤으로 추가했다는 내용도 있다. 또 당초 ‘증오의 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려 했으나 부시 대통령이 ‘악(evil)’이라는 단어를 워낙 좋아해 막판에 연설담당 보좌관이 ‘악의 축’으로 바꿨다.

부시 대통령은 ‘2·13 합의’에 따른 핵시설 불능화 조치로 북한이 2008년 6월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하는 과정을 TV로 흥미진진하게 지켜봤다. 콘돌리자 라이스 당시 국무장관이 “냉각탑 폭파는 시각적 효과에 불과하며 다시 냉각탑을 지을 수도 있다”고 충고했지만 부시 대통령은 폭파 장면을 지켜보며 “저게 바로 검증 가능한 비핵화 조치야”라고 말하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부시 대통령은 1기에는 딕 체니 부통령의 영향으로 북한에 강경하게 나갔다. 그러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 여파로 ‘전쟁 대통령’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질까봐 2기에는 라이스 장관의 충고를 받아들여 북한 테러지원국 해제 등 유화책으로 전환했다. 체니 부통령이 반발할 때마다 부시 대통령은 “(유화 조치들이) 사실 알맹이 없는 것들”이라며 달래기에 바빴다고 책은 전했다.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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