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사람이 중심 되도록… 도시공간 바꾼다

입력 | 2013-11-14 03:00:00

[대전의 ‘사회적 자본’ 혁명]<上>
아파트 가운데 도서관-학교 짓고 시민역량 강화 프로젝트 전개
염홍철 시장 “지역이미지 높일 것”




대전시는 중증장애인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관공서와 기관 단체에 장애인이 운영하는 건강카페를 개설해 지원하고 있다. 대전 유성구청 건강카페의 개소식 장면. 대전시 제공

“‘두루’를 아시나요?”

11일 오후 대전 대덕구 법동의 한 한의원. 김원일 씨(56·교사)가 보약을 한 첩 짓고 10만 원을 지불하면서 “7만 원은 신용카드로, 나머지는 ‘두루’로 내겠다”고 말하자 직원은 아무 말 없이 계산했다. ‘골고루’라는 순우리말에서 비롯된 ‘두루’는 대전에서만 유통되는 무형의 화폐다. 개인의 재능기부와 자원봉사활동의 가치를 지역 품앗이 조직체인 ‘한밭레츠(LETS)’가 화폐 단위로 환산해 축적해준다. 레츠는 지역화폐(Local Exchange Trading System)의 줄임말로, 미리 등록한 회원들끼리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노동과 재화를 거래할 수 있는 다자 간 품앗이인 셈이다. 2000년부터 대덕구 법동에서 시작됐다. 이 한의원도 한밭레츠 회원이다.

김제선 대전 사회적자본지원센터장은 “현재 600여 가구의 회원이 물품과 재화를 두루로 거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단체 홈페이지에는 중고물품 등도 수시로 올라오며 두루로 물건을 거래한다.

대덕연구단지인 유성구 전민동 일대에서는 ‘무료 과외’가 성행하고 있다. 과외에 나선 주인공은 바로 연구단지에 근무하는 석·박사들. 이들은 자녀와 자녀 친구, 동네 아이들에게 과학 교육을 무료로 해준다. 대전시가 추진하는 과학자 활용 프로그램에 따른 것이다.

이 밖에 대전 서구에서 탄생한 육아 온라인 카페인 ㈜도담도담은 회원이 3만여 명에 이른다. 이들은 공동육아 품앗이학교, 예비맘 교실, 임신출산육아박람회 등을 개최해 주부들의 ‘공동체 모델’로 꼽힌다. 대전시는 도담도담을 ‘사회적 자본형 마을기업’으로 선정해 육성자금 등을 지원하고 있다.

이들은 대전시가 시정 기조로 삼고 있는 ‘사회적 자본이 풍부한 대전’의 대표적 성공 사례다. 대전에서 사회적 자본을 일구는 모임과 기업이 늘고 있는 건 염홍철 대전시장(사진)의 강한 의지에서 비롯했다. 염 시장은 1980년대 대학생의 필독서였던 ‘제3세계의 종속이론’ 저자다. 그는 지난해 8월 호주에서 열린 세계과학도시연합(WTA) 행사에 참석한 뒤 귀국하던 중 깊은 생각에 잠겼다. 차기 시장 선거(2014년)에 출마하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을 때였다.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면서 지난 50년 동안 숨 가쁘게 달려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뤘다. 반면 삶의 질은 그에 비해 좋아지지 않았다. 사람 냄새가 나고 제대로 대접받는 ‘인간 중심의 도시’를 만들자는 게 시장으로서 마지막 바람이었다. 그게 ‘사회적 자본’이었다.”

염 시장은 사회적 자본을 더불어 사는 황제펭귄의 ‘허들링’에 비유했다. 허들링이란 황제펭귄이 추위를 이기기 위해 둥글게 모여 체온을 유지하다가 가장 바깥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펭귄에게 안쪽 자리를 내주는 걸 의미한다. 이런 나눔과 배려가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김동선 대전시 자치행정과장은 “사회적 자본 확충을 위한 3대 실천전략을 제도 마련, 시민 중심, 공간 창출로 정하고 시정의 틀을 개선했다”고 설명했다.

‘제도 마련’에는 조례 제정과 함께 사회적 네트워크와 공동체 형성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도시 공간구조의 재구성도 포함돼 있다. 예컨대 아파트를 건축할 때 주민 간 접촉을 늘리기 위해 도서관, 공원 등 공익시설을 중심부에 배치하도록 사전에 논의를 거치는 방식이다.

‘시민 중심’은 시민사회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대전 희망 지피기(시민대학, 배달강좌제, 인문학 프로그램 신설 등)와 대전 아이 키우기(토론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주니어 아크로폴리스 프로젝트, 지역 문화유산 강좌, 과학체험 프로그램 운영 등), 대전 마을 가꾸기(마을공원, 마을미디어, 마을기업, 마을텃밭사업 등) 등이다.

‘공간 창출’은 대덕연구단지 내 정부 출연 연구기관과 민간 연구기관, 각 대학이 각종 체육 및 휴식시설을 시민들과 함께 사용하는 대전 자원 나누기 운동과 공동체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문화를 만드는 대전 사랑 나누기 운동으로 전개된다.

염 시장은 “사회적 자본이 풍부하면 대전의 도시 이미지 프리미엄은 한층 높아진다. 남은 임기 동안 누구나 ‘나는 대전 사람’이라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사회적 자본 여건을 조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