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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칼럼]요동치는 기류 타고 右클릭하는 박원순

입력 | 2013-11-14 03:00:00

反종북 여론 확산 속에 태극기와 국가안보 챙기는 변신
차기 대선 불출마 공언은 안철수 신당에 서울시장 후보 내지 말라는 신호
차차기 염두에 두고 안철수 반기문에 호의적 반응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채널A 인터뷰(11월 3일 방송)를 하려고 서울시장실을 들어섰을 때 박원순 시장이 앉을 자리 옆에 있는 태극기가 눈길을 붙잡았다. TV 카메라에 잡히는 장소에 태극기를 세워둔 것은 최근 반(反)종북 여론의 상승세를 의식한 무대장치로 비쳤다.

이날 인터뷰에서 그에게 “과거 국가보안법 폐지론을 폈던 인권변호사로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게 국가보안법이 적용된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예상을 깨고 “인권은 헌법상 보장돼야 할 중요한 가치지만 국가 안보도 국민의 안전과 삶을 보장하는 기초적 조건”이라고 답했다. 서울시장이 된 후 인권변호사 시절과 생각이 달라졌느냐는 질문에는 “당연히 많이 달라졌고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박 시장이 국가보안법에 대해 기존의 인식과 확실하게 다른 발언을 공개적으로 한 것은 처음”이라고 보좌진이 인터뷰 뒤에 귀띔했다.

1980년대에 인권변호사로서 큰 발자취를 남겼던 고(故) 조영래 변호사가 박원순 변호사의 롤 모델이었다. 두 변호사는 같은 사무실을 썼다. 박 변호사는 저서 ‘국가보안법 연구’에서 “5공화국에서 수많은 무고한 학생과 시민이 국가보안법의 칼날 아래 ‘붉은 빛’의 색칠을 뒤집어쓰고 신음해야 했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전두환 정권이 붉은색을 뒤집어 씌웠다기보다는 시대적 환경이 자생적(自生的) 주체사상파들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전두환 정권 때 광주에서 빚어진 유혈사태와 군사정권의 독재에 절망한 젊은 대학생들은 김일성의 북한에 대해 대안적(代案的) 환상(幻想)을 품었다. 원조 주사파였던 김영환 씨가 만든 민혁당도 그런 수많은 사례 중의 하나일 것이다. 민주화와 함께 순수한 민주화운동과 주체사상파는 분리되기 시작했고 통진당과 정의당의 파경(破鏡)은 그 피날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영환 씨가 전향해 북한 민주화 운동가가 됐듯이 국가보안법 폐지론자였던 박 시장의 변신을 이상한 시각으로 바라볼 이유는 없다. 오히려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는 통진당 사람들이 사회 환경 부적응에 해당한다. 그러나 박 시장이 본격적으로 대선가도에 뛰어든다면 ‘국가보안법 연구’에 나오는 논리들은 학문적 정치적 검증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북한을 ‘반국가 단체’로 다루는 국가보안법의 근거인 헌법 제3조의 영토조항(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이 이미 사문화됐다는 기술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3권 19∼20쪽). 박 시장이 이 책에서 비판한 ‘반공(反共) 이데올로기’도 지금 기준으로 판단할 일만은 아니다. 김일성과 박헌영이 일으킨 전쟁의 참화를 겪은 대한민국에서 반공은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측면이 있었다.

박 시장의 우(右)클릭은 보수화한 유권자를 잡기 위한 선거 전략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고령화사회를 맞아 20, 30대 인구가 감소하고 상대적으로 50, 60대 인구가 증가하는 지형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더욱이 수도권인 화성갑 보궐선거에서 확인됐듯이 민주당의 지지율은 새누리당의 반 토막에 머무르고 있다. 이석기 사태 이후 여론의 기류가 요동치면서 박 시장은 외연 확장의 어려움을 절감했을 것이다.

박 시장은 채널A 인터뷰와 관훈토론에서 서울시장에 재선되면 임기를 채울 것이고 차기 대선에는 나가지 않겠다는 뜻을 거듭 확인했다. 야권에서 이 말을 가장 반길 사람은 그를 서울시장 후보로 밀어줬던 안철수 의원이다. 박 시장은 “차기 대선에는 안 나갈 테니 안철수 신당에서 서울시장 후보를 내지 말아 달라”는 요구를 공개적으로 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박 시장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 대해서는 아낌없는 덕담을 했다. 반 총장은 연임 임기가 2016년 12월에 끝나기 때문에 2017년 12월 대선에는 출마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 밑에서 외교부 장관을 지낸 반 총장은 여야 어느 쪽에도 열려 있고 특히 직선 대통령을 배출하지 못한 충청 주민의 기대가 높다. 차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박 시장으로선 반 총장과 부딪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는 “반 총장을 뉴욕 사저에서 만났다”며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인 분으로 대통령의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군웅(群雄)이 할거하는 대선후보군에서 반기문과 안철수가 어떻게 정리될지도 관심거리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차기 대선의 전주곡이 벌써 시작된 느낌이다.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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