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태풍’ 하이옌 필리핀 강타… 생지옥 타클로반 4信
허진석 기자
○ 한국 민간 구호단체 현지 도착
허진석 기자
한국 정부가 지원하는 담요, 텐트, 위생키트, 비상식량 등을 실은 공군 C-130 수송기 두 대는 14일 오전 6시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을 출발해 오후 3시경 타클로반에 도착할 예정이다. 물자는 필리핀 사회개발부에 전달돼 이재민에게 배포된다. 또 의료진과 119구조대 등으로 구성된 긴급구호대는 15일 공군 수송기편으로 타클로반에 도착할 예정이다. 긴급구호대는 의료진 20명, 119구조단 14명, KOICA 4명, 외교부 2명 등 40명으로 구성됐다.
13일 오전 세계식량계획(WFP)이 지원한 3000여 명분의 식량이 일차로 타클로반에 도착했다. 식량 분배가 시작됐다는 소식에 생존자들이 몰려들어 수백 m의 긴 줄이 순식간에 만들어지기도 했다. 또 아시아개발은행(ADB)은 2300만 달러(약 246억7000만 원)의 긴급 구호자금을 제공하고 5억 달러를 차관 형태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 이재민들, ‘시신과의 동거’
현지에서 시신을 수습하는 군인이나 경찰 관계자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DOH(Department of Health·보건부)’라는 글씨가 쓰인 필리핀 정부의 공식 시신 처리 가방에 담긴 시신이 길가에 보이지만 대부분은 방치된 상태였다. 12일 비가 내렸다가 이날 햇빛이 강해지자 시신이 불룩해지는 등 부패가 빨라지는 모습이다.
○ 이재민 굶주림 6일째, 당국은 ‘약탈과의 전쟁’
이날도 자동차는 물론이고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이용하거나 걸어서 타클로반에서 인근 사마르 섬으로 빠져나가는 긴 행렬이 만들어졌다. 솥단지와 간단한 보따리만 싸서 걷는 사람이 많았다. 이들이 탈출하던 오전 10시경(한국 시간 오전 11시경) 레이테 섬과 사마르 섬을 잇는 다리 부근에서 무장 괴한들과 정부군 간의 총격전이 벌어져 시민 한 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 신속대응팀도 현장을 지나다 긴급히 피신했다.
12일엔 굶주린 이재민 수천 명이 타클로반 아랑가랑 지구의 정부 식량창고를 습격해 약 10만 가마의 비축미를 약탈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창고 건물 벽이 무너지면서 이재민 8명이 압사했다.
타클로반 ANC TV는 13일 가장 큰 피해를 본 아부카이 마을에서 약탈에 나선 무장세력과 이를 저지하려던 정부군 사이에 총격전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오무알데즈 타클로반 시장은 “사람이 적을수록 먹여 살릴 부담이 준다”며 주민들의 이웃지역으로의 탈출을 독려했다.
태풍 피해 당시 타클로반과 인근에 있던 한인은 총 55명으로 이날 새로 집계됐다. 언론 보도를 통해 외교부 신속대응팀이 현지에 파견된 소식을 접한 한국 거주 가족들이 타클로반 거주자들의 생존을 확인해 달라며 외교부에 신고하면서 수가 늘었다.
이 중 생존이 확인된 사람은 32명이고 여전히 연락이 두절된 사람이 23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상당수 한인이 이미 육로나 항공편으로 타클로반을 빠져나갔다.
외교부 신속대응팀은 여전히 연락이 닿지 않는 23명의 주소지를 찾아가거나 지인을 통해 연락하는 방법으로 계속 생사를 확인하고 있다. 한국 공군 수송기가 타클로반에 도착하면 남아 있는 교민들을 태워 인근 세부 지역 등으로 보낼 계획이다.
○ 당국, 사망 2344명-부상자 3804명 공식발표
시신 수습 작업이 본격화되면서 태풍으로 인한 사망자 집계도 구체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베니그노 아키노 대통령은 13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태풍에 따른 인명 피해가 당초에 알려진 1만 명보다 훨씬 적은 최대 2500명 선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필리핀 정부는 13일 현재 태풍 하이옌으로 사망자 2344명, 실종자 79명, 부상자 3804명이 공식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확인된 시신만 집계한 숫자여서 향후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태풍 하이옌에 따른 피해 규모를 최고 수준인 ‘3급 재해’로 분류했다. 이는 22만 명이 희생된 2004년 인도양 지진해일(쓰나미), 약 23만 명이 숨진 2010년 아이티 대지진과 같은 등급이다.
타클로반=허진석 jameshuh@donga.com / 주성하 기자